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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Jan 02. 2020

일만 하면 지루해, 놀기만 해도 지루해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 등장했던 명대사. 누군가 명대사라고 딱히 말한 것은 아니지만 내게는 그 어떤 영화 속 명대사보다도 멋진 말이었다.


은정(전여빈)과 상수(손석구)는 시골에 위치한 어느 보육원에서 마주하게 된다. 이전에 상수(손석구)와 치열했던 욕설 배틀(?)로 마주했던 터라 은정(전여빈)은 그의 등장이 의심스러웠다(사회 적응 차원에서의 봉사 및 교화 활동 정도로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 정말 웃겼다). 하지만 상수(손석구) 또한 은정(전여빈)과 마찬가지로 많은 재산을 기부했으며, 틈 나는 대로 보육원을 찾아와 일손을 돕고 있다는 의외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굉장히 하기 싫은 표정인데 손놀림은 굉장히 익숙해..."

"하기 싫어~"

"근데 왜 해요?"

"해야 되니까~"


말 그대로 정말 하기 싫은 표정이지만 설거지를 해결하는 손놀림이 굉장히 익숙했던 상수(손석구).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 마디씩 거드는 은정(전여빈). 물론, 둘을 보며 로맨스나 설렘의 감정이 단 번에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어느 보육원의 부엌에 나란히 앉아 설거지를 하며 마음의 안정을 느끼고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이 둘은 많이도 닮아 있었다. 둘의 캐릭터가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람들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 뜬금없지만 참 괜찮은 어른들의 연애란 어쩌면 저 둘과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취향, 외모, 이상형 등이 전부 다를지라도 둘은 대화가 이어졌다. 사소한 대화의 '티키타카'가 계속 이어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연애든 인간관계든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함께 쭈그리고 앉아 설거지를 하며 시답잖은 대화를 어색한 침묵 없이 자연스레 이어가는 것. 살아가면서 그러한 사람을 한 명이라도 만난다는 것, 참으로 부러운 풍경 아닌가?


드라마 속 둘의 직업은 감독이다(정확히 말하자면 각각 다큐멘터리, CF 감독이다). 둘은 금전적으로 충분히 여유가 넘치는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모두 기부했다. 그렇다고 본인의 직업을 그만두지도 않았다. 일을 할 때는 치열하게 일을 하되, 자신들이 쉼을 찾는 공간과 행위는 이 보육원으로 향했다. 순수한 아이들과 놀아주고 함께 밥을 먹으며 설거지를 했다. 숨 막히는 빌딩 숲과 회사를 벗어나 아이들이 매달리는 보육원의 정겨운 놀이터에서 말이다.

일만 하면 지루해, 놀기만 해도 지루해
균형, 균형이 중요해
그렇지 않으면 넘어져

무뚝뚝한 표정으로 은정(전여빈)에게 진심을 전하는 상수(손석구). 그리고 내가 생각한 <멜로가 체질> 최고의 장면은 곧이어 등장한다. 한 가득 쌓여있던 설거지도, 밀려 있던 이불 빨래도 무사히 마치고 벤치에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는 은정(전여빈)과 상수(손석구).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귀엽게 물고 또다시 '티키타카' 대화를 이어간다.

"안아줄까요?"

"뭐... 뭐라는 거야? 당신이 날 왜 안아?"

(굉장히 당황하면서도 약간의 수줍은 연기가 내공이 느껴졌다ㅎㅎ)

"당신 힘드니까?"

"언제 내가 힘들다 그랬어? 그리고 내가 힘든데 당신이 왜 안냐고!"


은정(전여빈)의 질문과 함께 상수(손석구)는 주어와 서술어 사이를 한참 떨어트려 놓는 화법(?)을 구사한다. 유일하게 찾아온 침묵 속에서 은정(전여빈)은 상수(손석구)의 답을 기다린다.


"안으면...."

"...?"

"포근해."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일상생활은 가능할까?' 하는 은정(전여빈)의 표정과 함께 상수(손석구)의 품에 한 아이가 달려와 안긴다. 그리고 상수(손석구)는 다시 한번 그윽하게 내뱉는다. "포근해."


일만 하지도 않았고 놀기만 하지도 않았던 두 남녀의 코믹하고도 흐뭇한 장면. 최근 마주했던 그 어떤 드라마보다 포근한 장면이었다. 멋진 드라마, 좋은 드라마란 이런 장면이 자주 등장해야 하는 것 아닐까. 드라마를 보고 있는 2030 남녀들 중에서는 이 흔한 대화 장면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을지도. 일만 해왔거나 혹은 놀기만 해왔기에 균형이 무너진 상태인 사람들이 우리 곁에 소리 없이 꽤나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 또한 은정(전여빈)과 상수(손석구)의 대화와 그들의 품에서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있었다.


하루 봉사 일과를 마치고 보육원을 나서며 상수(손석구)는 은정(전여빈)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건넨다.


휴식은 집에서 하는 게 아니야
당신은 오늘 정말 값진 여행을 한 거야,
이제 집에 가서 선물을 받아

둘 다 많은 재산을 기부했고 같은 보육원에 와서 하루를 보냈지만 서로의 고민은 분명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집에서만 갇혀있는 휴식이 아닌,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아이들을 찾은 은정(전여빈)과 상수(손석구). 마지막 상수(손석구)의 말이 참 와 닿는다. 


어떤 고민이 있어서 집을 나왔고 좋은 공기와 좋은 사람들과 하루를 땀 흘리며 보낸 은정(전여빈). 이제 집에 돌아가면 당신을 힘들게 했던 고민의 작은 답이 있을 거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상수(손석구).

고민이 있어서 집을 나오거나 평소 있던 공간과 사람들을 벗어난 적이 한 번쯤 있지 않은가. 일만 하고 싶지 않아 균형을 찾으려 떠난 곳에서 느낀 낯선 감정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변해있는 나의 감정과 의지. 그게 가장 큰 선물임을 여태 모르고 지내왔던 것 같다. 아주 멀리 떠난 여행지에서 감상에 빠져 무언가 메시지를 얻으려 했던 내가 오버랩되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상수(손석구)의 한 마디에서.



힘들 때 안으면... 정말 포근하다. 멋진 어른이 되기 전에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은정(전여빈)과 상수(손석구). 이 둘만으로도 <멜로가 체질>에 빠졌던 내 시간과 감정들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 사실, 늦은 밤 잠에 들기 전에 <멜로가 체질> 영상을 자주 봤다. 정주행까지는 아니었으나 드라마 특유의 분위기가 자꾸 생각났다. 따뜻하게 위로받고 싶었다. 그래서 꼭 한 번은 은정(전여빈)과 상수(손석구)의 이야기를 브런치 글로 남겨두고 누군가 함께 이 감정과 위로를 느껴주기를 바랐다. <멜로가 체질>을 빛나게 해 준 두 배우의 매력에 푹 빠져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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