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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Dec 31. 2019

2019년, 우리들의 오글거림과 낭만은 비례했다

낭만 : [명사]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정확히 1년 전, 2019년을 시작하며 나는 온갖 낭만에 가득 차 있었다. 새해를 시작하며 새롭게 다짐한 것들도 많았고 마주하게 될 사람들에 대한 기대감도 적지 않았다. 이루고자 했던 목표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뛰었고 다시 돌아올 계절들에 대한 수줍은 설렘으로 부풀어 있었다. 매년 똑같은 레퍼토리로 돌아오는 제야의 종소리도 말 그대로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2019년의 현실을 2018년 12월 31일에는 굳이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로또를 사는 까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지극히도 낮은 확률일지라도 그것이 이루어질 조금의 가능성과 희망이 있기에 나는 잠깐이나마 낭만적인 내일을 꿈꿀 수가 있는 것이었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눈 깜짝할 사이 4번의 계절이 바뀌었고, 다시 한번 낭만을 마음껏 그려볼 수 있는 날이 왔다. 바로 2019년의 마지막 날. 오랜 기간 준비해온 간절한 시험에 합격하는 것, 길었던 연애 공백을 깨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세상이 온통 핑크빛으로 보이는 것, 갈등을 겪고 있지만 매일 같이 봐야 하는 회사 동료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 등... 쉽지 않겠지만 많은 이들이 마음 한 편에 소리 없이 저마다의 낭만적인 꿈들로 가득 채워 갈 것이다.


얼마 전 크리스마스에 바라봤던 몇몇 풍경들이 있다. 가족끼리 카페에 놀러 가도 누군가는 우리를 손님으로 맞으며 일을 하고 있었으며 커피를 내려주고 빵을 구워주었다. 천사 같은 아이를 품에 안고 온 몸으로 추위와 바람을 막아주던 젊은 부부, 술기운이 조금 올라 오래된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20대 사회 초년생들, 청계천의 아름다운 불빛을 구경하는 와중에도 바쁘게 손님을 나르며 다가올 새벽을 맞이하던 택시 기사분들.


이 모든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저 풍경 속 주인공들은 사는 게 고달프고 쉬이 나아지지 않는 하루 속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낭만적인 풍경을 그려내고 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물론,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가 떠올리는 생각들은 그저 낭만적인 일들로만 가득 차 있지 않다. 누군가에겐 다시없을 행운의 해였을 테고 누군가에게는 아쉬움 가득한 반성의 해였을 수도 있다. 정리하자면 한 해의 발걸음을 돌아보며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낭만'이 아닌, 약간의 '오글거림'이다.


추억은 당사자의 지극히도 주관적인 풍경으로 그려지기 마련이다. <바람이 분다 - 이소라>의 노랫말에서도 말하지 않던가.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라고. 생각하기 싫은 것들은 의도적으로 기억에서 배제하기도 한다. 기분 좋은 기억들은 색안경이라도 낀 듯이 몹시도 화려한 장면으로서 어느 로맨스 영화에서나 들어볼 법한 배경음악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하늘을 찌를듯한 자존감 그리고 함께 살아나는 올해의 하이라이트 장면들.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기억들 이건만 '저 때 참 좋았지...' 혹은 '그때 왜 그렇게 행동하고 말했을까?' 하는 오글거림이 들기도 한다.

90년대 초반 태어난 지금의 20대 중후반들에게 버즈나 동방신기의 노래를 들려주면 어떠한 반응이 오는지 아는가. '저 때는 왜 저렇게 촌스러운 모습과 노래들을 좋아했을까?' 하는 오글거림을 일부러 꺼내면서도 이들은 그 시절을 낭만적으로 떠올린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간관계가 확장되며 어른이 된 우리는 미숙하고 촌스러웠던 그 오글거림이 싫지만은 않다. 아니, 오히려 가끔은 사무치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미래의 꿈같은 날들도 낭만이 될 수 있겠지만 지나간 좋은 날들을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들에게는 충분한 낭만이 될 수 있음이다.


1년 전, 2019년을 야심 차게 시작했던 우리들의 마음은 낭만적인 것들로 가득했을 터. 새해를 시작하며 우울한 과거부터 돌아보는 이는 없은가. 그것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입가에 지어지는 옅은 미소는 또 다른 내일을 힘차게 살아가게 한다.

불과 몇 시간 남지 않은 2020년에는 더 자주 오글거리고 낭만적인 일들이 많아지기를!


2019년, 우리들의 오글거림과 낭만은 비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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