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마음

그곳에서

by 산연랑



김영하 작가님의 장편소설 "작별인사"를 보고 만든 음악이다.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는 그 즈음에, 책소개를 읽고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읽기 시작한 책이다. 평소에 알쓸신잡의 엄청난 팬이었고, 김영하 작가님의 말들을 너무 좋아해서 그분의 소설은 또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기대감에 가득차 있었다.

'직박구리를 묻어주던 날' 한 챕터를 읽자마자 책을 덮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너무 재밌어서.

나는 단편소설보다 장편소설을 선호한다. 호흡이 길고 인물의 이야기가 조금 더 구체적이고 많아서 더 재밌고 더 많이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관에 오랫동안 빠져들어 허우적거리며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는 점이 가장 크다. 물론 너무 재밌는 단편을 읽으면 또다시 허우적거리지만, 대체로 나는 장편소설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작별인사'를 읽고 있을 그 무렵에 나는 편입 준비를 하던 학생이었고 레슨을 받으러 집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학원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그 책을 읽었었다. 원래라면 집에서 편안하게 읽었겠지만 책이 너무 재밌어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속상해서 되도록이면 버스 안에서만 읽자! 다짐했다. 결국 사흘 만에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꾹 참고 오래 읽으려 했지만 내 마음과는 별개로 머릿속이 온통 작별인사로만 가득했기 때문에...

완독을 다 하고 난 뒤 책을 덮자마자 일어났다.

이대로 끝내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음악을 만들자.

바로 작업실로 들어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작별인사를 다 읽고 난 뒤 내가 느낀 감성을 그대로 느껴보려고 애를 썼다. 아주 초반엔 마이너한 코드들이 많이 나왔다. 그 즈음에 나는 감성적인 노래보다는 조금 더 파격적이고, 몽환적이며, 아주 어두운 노래들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이너한 멜로디가 쏟아졌었다. 그러다 선이 끊어지듯 뚝, 하고 멈춰버렸다.

더 이을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내가 만든 멜로디를 더 크게 확장시킬 수가 없었다. 도저히 내가 보고 느낀 작별인사의 모습을 이 마이너한 음악들로 구현해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서 그만 두기엔 아쉬워서 계속해서 붙들고 지냈지만 결국 나는 일단 포기, 하고 선언했다. 때로는 기다려야 오는 것들이 있으니까 무심코 어느날 나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그렇지만 제발 일찍 찾아왔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시간은 11월로 달려갔다.


내 첫 홀로 여행지는 캐나다였다. 친척분이 살고 계셔서 3주 정도 캐나다로 가게 됐는데 처음에는 언니와 함께 갈 예정이었다가 언니가 일이 생겨버려서 홀로 여행이 결정됐다. 첫 홀로 여행이라니, 나는 그 생각만으로도 너무 설레서 여행 당일날 유심칩 예약도 못하는 큰 일을 벌렸다...

여행은 정말이지 무척이나 행복했다. 카메라 한 대를 들고가며 이곳저곳을 찍고 다시 돌아와 내가 찍은 것들을 보며 행복해하고, 공원에 앉아 도넛과 음료를 마시며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읽었다. 그때의 경험이 나에겐 굉장히 세게 박혀왔고 '나는 우주의 기억을 찾기 위해 지구를 떠도는 여행자구나.' 라는 걸 잊지 않는 사람이 됐다.


여행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충분히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쯤에서 그만두고, 다시 돌아와 음악 얘기를 하자면 나는 캐나다에서 출국 전, 한국으로 돌아가서 내가 꼭 해야할 일 몇 가지를 정했다. 볼펜을 들고 노트에다 가장 먼저 적은 것은 '작별인사 마무리하기.' 였다. 근6개월간 쓰지 못한 음악을, 이번에야말로 결판을 짓겠다는 어떤 큰 포부였다. 그리고 12월에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작업실로 향해 초반에 썼던 멜로디 다음의 음악을 쓰기 시작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새로운 마음가짐과 여행에서 막 돌아온 아쉬움과 그때의 행복함을 간직한 채 작업을 하다보면 나오겠지 라는 생각은 조금 무리였던 것이었을까. 악기도 생각나지 않고 어울리는 분위기도 찾기가 어려웠다. 이대로라면 12월이 다 가고 나서도 완성을 해내기엔 어려울 듯 싶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기분이 그닥 좋질 못했다. 꼭 마무리를 짓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처음부터 어긋나는 것 같아서,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귀중한 꿈을 꿨다.

그것은 영화음악을 시작하면서부터 한 번도 꿔보지 못한 꿈이었다.



어느 똑같은 평일, 나는 작업을 미루고 낮잠을 청했다. 이불을 덮지 않고 내 방이 아닌 언니 침대에서 천장을 똑바로 보고 누운 채 완전히 잠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꿈속에서의 나는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꿈속의 장면을 설명해보자면, 유튜브 속 피아노 연주 영상에서 건반과 손가락만 나오는 영상과 비슷한 모습으로 치고 있었다. 얼굴은 없었고 단지 내 손가락과 건반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 꿈에서 나는 매우 마음에 드는 멜로디를 치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정신은 꿈에서 깨어났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랐으나 순간적으로 이건 꿈이고, 나는 꿈에서 깼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완전히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고 꿈은 계속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정신만 깨어있는 상태에서 나는 또다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그 경험은 생소했지만 무척이나 신기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 멜로디를 완전히 외울 때까지, 나는 절대로 깨어나서는 안 된다.

멜로디를 외워도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까먹을까봐 나는 내 손가락 번호의 움직임까지 다 외우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외우고, 속으로 노래도 불러보고, 멈추지 않은 나의 연주를 끊임없이 듣고나서야 나는 눈을 뜰 수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곧바로 작업실로 향했다. 작업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이토록 흥분될 줄이야.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아 방금 꿈속에서 들은 멜로디를 치기 시작했고, 그와 어울리는 코드를 찾아 괜찮은 연주를 맞췄을때 때 비로소야 안도의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이건 작별인사다.

나는 다시 이을 수 있다.


나는 곧장 책을 들고 왔다. 읽고난 뒤의 감상보다 내가 꼭 드러내고 싶은 장면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책을 다시 읽으면서 가장 여운이 깊게 남은 장면이 어디었을까 둘러봤다. 답은 주인공의 마지막이었다. 들판 위에서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는 주인공을 상상했다.

내가 상상한 들판은 알프스 산맥과 비슷했다. 우거진 숲과 높은 나무들 사이에 자리잡은 오두막집, 화창하지도 않고 어둑하지도 않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최후를 맞이하는 주인공이 계속해서 생각났기 때문에 나는 그 장면을 택했다. 장면을 택하고 난 뒤엔 악기가 술술 정해졌고 멜로디를 받쳐줄 음까지 술술 나왔다.

초반에 분위기를 고조시킬 것만 같은 떨리는 주법으로 연주하는 현악기의 시작과 다시 레가토 주법으로 받아치는 지점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구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거의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멜로디는 바로 내가 꿈에서 만난 멜로디였다. 들으면서도 나는 아직까지 그 꿈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런 경험을 또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정말로 나에게 와줬구나, 하는 벅찬 마음이 든다.


서툰 실력이지만 마스터링 작업까지 다 완료하고 난 뒤, 나는 영상으로 음악을 올리기 위해 영상 속 사진에 뭘 넣어야 할까 고민했고 그 고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내가 상상했던 걸 그리자.

비록 그림엔 재능이 없지만 나는 내가 상상한 그곳을 꼭 표현하고 싶었다. 하늘과 나무, 우거진 숲, 그리고 오두막집을 그리고 난 뒤엔 이상하게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기분을 고이 접어뒀다가 훗날 나의 노래를 녹음할 수 있을 때 그때 꼭 이 곡을 꺼내야지’ 하고 다짐했다.


https://youtu.be/EVNaXZ_jPdg​

twitter : @yeonran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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