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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감 Jan 25. 2021

여섯 번째 수필

만남 - 2020.10

10월과 함께 연휴가 찾아왔다. 가까이 있지만 시간이 맞지 않던 친척들도, 멀리 있어 볼 기회가 없던 친구들도 연휴를 계기로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이번 만남까지 제법 시간이 걸린 지인들이 많았다. 그동안 공유하지 못한 세월들이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 법도 하지만, 그 공백을 채우고 남을 만큼 반가움이 더 컸다.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하다. 무리 지어 움직이는 행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활기차서 역시 명절이구나 싶었다. 괜스레 나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구름떼 같은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친구들과 함께 자주 가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해봤지만 결국 늘 먹던 안주와 술을 주문한다.


뭐하고 지냈냐, 애인은 있냐 같은 시시콜콜한 질문들로 서로의 근황을 새로 고쳤다. 각자가 겪은 우스꽝스러운 경험이라던가 황당한 일들, 또는 기억에 남는 사건들을 펼치면서 빈 병을 줄 세운다. 당시에는 제법 심각했던 문제들도 지금은 웃으며 안줏거리 삼는 걸 보면 결국 시간이 약이구나 생각한다. 지금 각자가 가진 문제들도 후에 돌아보면 추억으로 분류될까. '그래 그땐 이런 걸로 고민했었지. 이제 보니 별 것 아닌데 말이야'고 말하며 웃을 수 있을까. 평생 크고 작은 고민거리를 안고 살아가겠지만 그 고민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헤쳐가면서 한 명의 사람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성숙해질 것이라 믿는다.        

  

분위기는 무르익어가고 적당한 취기에 몸을 맡긴다. 제법 오래 떠들었다 싶지만 우린 지칠 줄 모르고 대화를 이어간다. 처음 본 시절에 비해 그렇게 달라지지 않은 친구들의 외관을 보고 있으면 옛 모습과 겹쳐져 향수에 잠기게 된다. 내가 그들을 보며 과거의 나를 떠올리듯이 그들도 나를 보고 과거의 자신들을 떠올릴까. 앞으로 몇 번의 계절이 바뀌면 그때는 서로 모르고 지내온 시간보다 알고 지낸 시간이 더 길어지게 되겠지. 나이 들어가는 서로의 모습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이로 남고 싶다.  


나는 오늘도 우리의 만남을 사진으로 담아둔다. 기억이라는 모래알이 모래시계를 빠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 이 날은 누구를 만나 무엇을 먹었고, 또 다른 날은 누군가와 이 곳에서 시간을 보냈었구나 하며 한 번씩 모래시계를 뒤집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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