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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감 Jan 27. 2021

일곱 번째 수필

귀갓길 - 2020.10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나는 한 동네에서 살았다. 한 번 이사를 했지만 머무르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 동네는 변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 2학기에 지금 사는 동으로 전학을 왔는데, 초등학교와 가까운 거리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모두 있어서 같은 동네에 머무르며 고등학교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집과 학교가 무척 가까웠다. 친구들이 농담으로 쉬는 시간에 집에 가서 볼일 보고 와도 되겠다,라고 할 만큼 근처에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집과의 거리가 가깝지 않았는데, 성인이 된 지금도 그 거리가 아득하게 느껴지니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물론 버스를 탄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교통비를 대가로 육체적인 피로를 면하는 대신 튼튼한 몸이 장점이던 어린 나는 걷는 걸 택했다.


당시 귀가하던 풍경이 지금도 선명하다. 스포츠 센터 건물 정문의 한 귀퉁이에 위치한 분식점은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유일한 분식점이었다. 진한 녹색으로 페인트칠된 철제 구조물에 투명한 가림막이 쳐져있고 4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긴 의자만 갖춰진 소박한 가게였다. 주인 내외가 손님들을 받았는데 귀가 시간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지갑 사정이 어렵지 않다면 떡볶이를 시켜 친구와 나눠먹었다. 분식점이 있는 곳을 기점으로 헤어지는 친구들이 있어서 배가 고프지 않아도 떡볶이를 핑계 삼아 친구와 수다를 나누기 위해 들린 적이 많았다.  


분식점 앞 삼거리를 건너면 꽃집이 있고 그 바로 옆에는 청과물 가게가 있었다. 청과물 가게의 열려있는 미닫이문 사이로 하얀 솜뭉치 같은 강아지가 엎드린 채 고개를 내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늘 더위 먹은 것처럼 축 늘어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바닥에 들러붙은 백설기 같았다. 일직선으로 주욱 뻗은 길로 내려가다 보면 초등학교 동창의 부모님이 하시는 서점이 나오는데 사장님이 항상 웃는 얼굴로 반겨 주셨다. 사방을 둘러싼 책꽂이는 책들이 가득 차있고 서점 한가운데는 바닥부터 천장 높이까지 책이 쌓여있어서 가게 안은 한 사람이 겨우 움직일 공간만 있었다. 그 종이의 숲에서 손님이 요구한 책을 척척 찾아내는 사장님이 대단하다는 인상이 남아있다.


가로수 마냥 줄지은 아파트 단지들을 헤아리며 걷다 보면 슈퍼마켓이 나온다. 분식점에 이어 내 걸음을 멈추게 하는 두 번째 생선가게인 셈인데, 대부분의 경우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배가 고픈 것과는 별개로 입이 심심해서 뭐라도 손에 쥐고 가야 남은 길이 덜 힘들었기 때문이다. 집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더 멀었던 것도 있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와 함께 집에 갈 만큼 친한 것도 아니었기에 슈퍼마켓 즈음에 이르러서는 혼자인 경우가 많았다. 그때는 휴대전화나 MP3를 갖고 있지 않아서 음악을 들을 수도 없이 그저 묵묵히 걸어야 했다. 지금이야 귀를 열어둔 채 산책을 해도 이런저런 생각을 떠오르는 대로 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지만, 어린 나는 그런 삶의 노하우가 없어서 남은 길이 멀고도 고되었다. 가방이 어깨를 파고들어 목덜미가 뻐근할 때쯤 되면 집이 시야에 들어왔다. 매번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돼서 침대에 몸을 누이면 한동안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기절한 듯 가만히 숨만 쉬고 있다 보면 어느새 퇴근한 어머니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예전에 비하면 많은 것이 변했다. 주택들이 허물어지고 아파트가 올라가고 슈퍼마켓 대신 편의점이 들어서고 비디오 대여점을 밀어내고 학원이 생겼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분식점과 서점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단정하게 머리를 잘라주던 미용실도 변함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오래된 아스팔트가 벗겨지고 새로 포장되어도 길은 여전히 남아있듯이 그 시절 그 길을 걷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내 안에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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