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과 잡무 - 2020.10
12월이 시작되었다. 올해를 시작한 지 엊그제 같다,라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그래도 제법 빠르게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한다. 쌀쌀하고 건조하던 겨울과 뜨겁고 습하던 여름, 그리고 시원하지만 짧았던 봄과 가을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 큼직큼직한 사건은 없었지만 기억을 헤집다 보면 '아 그런 일도 있었지' 하는 순간들이 떠오른다. 스스로가 기억해내는 것들보다 친구들과의 수다로 되살아나는 장면들이 더 많아서 오히려 타인을 통해 잊고 있던 먼지 쌓인 추억들을 되찾는 편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친구들을 만나 다시 한번 기억을 환기시킬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보고 싶은 얼굴들을 충분히 눈에 담지 못한 채 1월을 맞이하면 괜히 섭섭하다.
맞벌이이신 부모님은 아침 일찍 출근하신 뒤 보통 저녁시간쯤 귀가하셔서 함께 식사를 하신다. 어머니는 5시에서 6시 사이에 오시고 아버지는 7시 반쯤 도착하시는데, 아버지가 오시는 시간에 맞춰 어머니는 저녁을 준비하신다. 우리 집은 누가 나서서 각자에게 역할을 부여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역할분담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음식을 잘하시는 어머니는 식사를 담당하시고 깔끔한 성격의 아버지는 집안의 청결을 책임지시며 특출 난 장기가 없는 나는 설거지 및 잡무를 담당하고 있다. 내가 맡은 잡무라는 것은 어머니가 오시기 전에 쌀을 씻고 밥을 안쳐둔다던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분리수거를 한다든지 부모님께서 역할을 수행하시는데 문제없게끔 준비해두어야 하는 항목들을 의미한다.
남들보다 길었던 수험생 시절에 나는 모든 집안일에서 자유로웠다. 애초에 집은 잠을 자는 장소에 불과할 정도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 자체가 적었던 것도 있고 공부에 집중해라는 부모님의 배려도 있어서 그동안 가족 구성원이지만 집안일의 책임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험생 신분을 벗어난 뒤로는 나 역시 손을 놀릴 수 없었다. 부모님은 퇴근 후에 집안일까지 하시는데 가장 젊고 일도 없는 내가 가만히 있으려니 원체 가시방석인지라 설거지라도 하겠다고 먼저 말씀드렸다. 내가 설거지 담당이 되기 전에는 어머니께서 식사 준비부터 설거지까지 함께 맡으셨는데, 생각해보면 무척 불공평했던 것 같다. 상을 차린 사람은 적어도 설거지를 면책받을 기회가 주어져야 했을 텐데, 못난 아들 때문에 어머니는 그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기분 탓인진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설거지로부터 자유로워지신 뒤로 전보다 더 많고 다양한 그릇들로 상을 준비하시는 것 같다. 그동안의 처우에 대한 작은 복수인 걸까.
매주 수요일은 아버지의 휴일이자 아버지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시는 날이다. 바닥에 놓여있던 카펫들의 먼지를 훌훌 털고 들어 올려 한 곳에 모아두신 뒤 청소기로 집안 구석구석 밀기 시작하신다. 눈에 띄는 먼지뿐만이 아니라 침대나 가구의 아래처럼 무릎을 바닥에 붙이고 엎드리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곳이라던가, 나라면 생략했을 베란다나 현관까지 빠짐없이 청소하신다. 청소기로 집안 전체를 밀고 나면 걸레질을 할 차례이다. 청소기를 돌릴 때와 마찬가지로 구석구석 걸레질을 하시는데, 걸레질이 끝나면 행주를 빨아오셔서 책상이나 가구 또는 액자에 쌓인 먼지들을 닦아내신다. 우리 집이 큰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혼자 청소를 하기에 작은 것도 절대 아니라서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고 나면 두 시간은 훌쩍 지나있었다. 청소를 끝내고 나서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상의가 아버지가 하신 노동의 강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예순에 다가가는 아버지께서 청소를 하시는데 젊고 몸도 건강한 놈이 가만히 있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 대청소 또한 나의 잡무 범위에 포함시켰다. 아버지가 청소기를 돌리시고 나는 이후에 걸레질을 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했는데, 고작 걸레질만 할 뿐인데도 허리와 무릎이 아리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이전까지 아버지가 이 과정을 전부 혼자서 하셨다는 사실에 대단하다 느끼면서 아들이 도와주니 훨씬 편하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좀 더 일찍 도와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속상했다. 아버지가 취미 삼아, 혹은 가벼운 운동으로 하는 정도가 되게끔 내가 청소의 더 많은 부분을 담당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덕을 본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 시간이 되면 차려지는 밥상, 바구니에 두기만 하면 깨끗하게 세탁된 후 잘 말려져 돌아오는 옷들, 머리카락 없이 잘 청소된 화장실, 그리고 머무르고 있는 집이라는 공간까지 정말 많은 것들을 부모님 덕에 누리고 있다. 너무 익숙해져서 때로는 당연한 것이 될 것 같지만 결코 당연한 것들이 아님을 잊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고 누가 그랬던가. 그 말이 절절하게 와 닿는다. 부모님과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지금을 더욱 소중히 다뤄야겠다. 매주 하는 청소, 끼니마다 하는 설거지도 비록 평범한 집안일이지만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어 각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