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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감 Jan 20. 2022

열다섯 번째 수필

채찍질

‘너 요즘 글은 쓰고 있냐’

내 꿈이 작가인 것을 알고 있는 친구 녀석들은 오랜만에 만나면 꼭 내게 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요즘은 안 쓰고 있다, 나는 소설을 쓰고 싶은 거지 수필을 쓰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며 어설픈 변명을 내밀며 도망쳤다. 그렇다면 소설을 쓰기 위한 노력은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소재를 생각 중이다, 좀 더 준비되면 쓰고 싶다는 궁색한 답변밖에 내놓을 수 없으면서.


소설을 읽는 것이 좋았고 작가가 만든 책 속의 세상을 향유하는 것이 즐거웠다. 작가를 꿈으로 삼은 것은 나도 나의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게 시작이었다. 내가 만든 세계에 인물들을 설정하고 그들에게 역할과 스토리를 부여하다니.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이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된다.


소설의 소재에 대한 생각을 하루라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괜찮은 소재가 떠올랐다 싶으면 자려고 누운 순간에도 벌떡 일어나 메모했다. 다만 소재가 있어도 ‘스토리를 구상하고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 것인가’의 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번번이 물러난 것이다. 충분히 고민해서 등장인물들에게 개성을 부여하고 설정을 구체화해서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세상을 구축해줬어야 했으나 그러질 못했다. 요컨대 끈기와 노력의 부족인 것이다.


소설을 준비하면서 수필을 써 내려가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인가. 소설에 집중할 수 없어서 그랬다? 그만큼 ‘소설 준비’를 성실히 했다고 할 정도로 양심이 없지 않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 아닌가. 소설에 진전이 없더라도 문장을 만드는 건 여전히 좋아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형식이 무엇이 됐든 문장을 만들어야 했다. 수필을 쓰면 소설을 준비할 수 없다는 과거의 나는 오만했다. 막연히 꿈만 갖는 것으로는 이룰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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