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감 Feb 14. 2021

열 번째 수필

12월과 새로운 경험 - 2020.12

날이 너무 따듯해서 산책하기 좋다고 말한 것이 불과 일주일이 되지 않았는데, 그 말이 자존심을 상하게 했는지 겨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계절감을 되찾았다.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과 더불어 살갗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불어대는 바람은 체감온도를 더욱 낮게 만들었다. 이불 밖은 위험해,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바깥 상황은 약속을 전부 취소하고 집에 있고 싶게끔 한다.


12월 중순의 날짜를 표시하는 핸드폰 화면을 보면서 시간이 참 빠르다는 뻔한 말은 또 하지 않겠지만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기 시작한 9월 중순으로부터 약 3개월, 즉 한 분기에 해당하는 시간이 지나간 셈인데 그 사이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보다 계절감의 변화가 먼저 떠오른다. 9월에 들어섰을 때는 가을이 맞나 싶은 미지근한 공기와 함께 끈적한 습기가 남아있었고, 10월에는 심해진 일교차 때문에 간편하게 입고 벗을 수 있는 외투를 챙겨서 외출했었고, 11월부터는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 탓에 피부가 갈라지기 시작했었다.  


12월부터 가까운 동생의 소개로 학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11월이 끝나가던 무렵, 즉흥적으로 성사된 동생과의 술자리에서 동생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자신의 자리를 물려받을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얘기를 듣기 전의 나는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고, 일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과소비만 하지 않는다면 부족하지 않았기에 여태까지의 생활에 변화를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본인이었으나,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며 적극 권유하는 동생의 태도에 흥미가 생기고 말았다.    


사실 처음 동생으로부터 학원을 소개받을 때 상상했던 내 역할은 흔히들 말하는 '재시 쌤'인 줄 알았다. 수업을 하는 선생님들은 따로 계시고, 나는 수업 이후 자습시간을 맡아 학생들이 풀어온 숙제를 매겨주고 모르는 것이 생기면 설명해주고 이해를 도와주는 정도로 내가 할 일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장님과의 짧은 면담은 내 상상이 착각이었음을 알아채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동생의 소개 덕분에 일을 하는 것은 사실상 확정된 상태였으나,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신 것도 있고, 급여문제와 학원 내에서의 나의 역할을 알려주시기 위해 미리 원장님을 뵙는 자리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나는 '재시 쌤'이 아닌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진도를 나가는 '선생님'의 역할을 맡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상했던 것보다 역할의 무게감과 책임감이 느껴져서 조금 부담스러웠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이해하도록 돕는 것은 좋아하지만 경력으로 쳐줄만한 경험이 없어서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더군다나 학창 시절 내내 어색한 사이였던 수학을 담당하라니. 고등학생 때 지겹게 봤던 수학의 정석을 지금 와서 다시 펼치게 될 줄은 11월의 나는 알 수 없었다.


2주 동안 6번 출근한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는 것은 걱정했던 것만큼 일은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다. 초등학생을 담당하는 시간이 가장 많았는데, 초등수학은 기억에서 휘발된 용어들이 생소할 뿐이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수월했다. 중학생은 원래 나의 시간표라면 마주칠 일이 없지만 종종 다른 선생님을 대신해 수업에 들어갈 때 만나는 편인데, 초등수학보다 난이도가 있지만 마찬가지로 가르치는 것은 문제없었다. 고등수학의 경우 내가 학생일 때와 지금은 교육과정이 완전히 다른데, 다행인 점은 내가 취약하고 싫어하던 부분이 교육과정이 개편되면서 빠지거나 학생들의 선택을 못 받고 있어서 해당하는 내용을 다룰 일이 없게 됐다. 그래도 종종 설명하기 벅찬 부분들이 있어서 고등학생 수업이 있는 날이면 학원에 일찍 도착해 그 날의 진도에 해당하는 내용을 예습해놓는다. 학교 선생님이나 인터넷 강사처럼 훌륭한 실력이 있는 것도, 그렇다고 문제를 푸는 센스가 있는 것도 아니므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상대하려 한다. 새삼스럽지만 교육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존경스러워지는 12월이다.      


언제까지 학원에 몸 담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겨울방학 동안은 학원에 나가지 않을까 싶다. 일을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이 모두 친절하시고 또 학생들도 착하고 볼수록 정이 붙어 여건만 허락한다면 계속 일하고 싶다. 다음 출근날이 기대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홉 번째 수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