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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감 Feb 14. 2021

열한 번째 수필

제주도 여행기 #1 - 2021.02

무척 오랜만에 제주도를 갔습니다. 저를 포함한 네 명이서 떠났는데 ‘정말 이렇게 해도 돼?’ 싶을 정도로 여행 준비는 급하게 이뤄졌습니다. 비행기표를 예매하는 것이나 숙소를 잡는 것을 떠나기 이틀 전에 부랴부랴 해치웠거든요. 차를 렌트하는 것은 심지어 출발 당일 아침에 했습니다. 이렇게 긴박하게 준비를 하는 것은 제 성미에는 맞지 않지만 ‘뭐 이 친구들과 함께라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어서 사실 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제주도에서 무탈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으니 제가 했던 걱정은 사소한 것이 되고 말았고요.


마지막으로 간 제주도는 18년도 8월, 어머니와 단둘이서 간 여행이었습니다. 그때는 일주일 정도를 제주도에서 보냈지만 이번에는 설 연휴 시작하기 전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가게 됐습니다. 2박 3일이래도 실질적으로 제주도에 발 붙이고 있는 시간은 48시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월요일 오후 5시에 제주에 도착해서 수요일 오후 2시에 떠났기 때문이죠. 짧지만 가득했던 제주도에서의 추억을 차근차근 얘기해보려 합니다.


- 월요일 21.02.08


공항에 도착한 것은 3시,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남은 때였습니다. 우리 네 명은 돌아오는 비행기는 같았지만 제주도행 비행기는 모두 달라서 홀로 공항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행기를 타는 것도 몇 년 만이었는데 혼자서 탑승수속을 밟자니 다소 긴장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공항에 올 때면 항상 친구 또는 가족과 함께 왔더군요. 외로워질 뻔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해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처리했습니다. 혹시나 문제가 생기더라도 대처할 수 있게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왔지만 다행히도 그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느긋하게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저보다 30분 늦은 비행기를 타는 친구를 잠시 볼 수 있었습니다. 자주 만나는 친구지만 공항에서 보니 기분이 또 색다르더군요. 이러쿵저러쿵 짧은 대화를 몇 마디 주고받으니 출발 시간이 가까워져서 ‘제주도서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저는 먼저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공항 입구와 대합실


엔진이 돌아가고 비행기는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덜컹거리며 활주로까지 도달한 비행기는 숨을 고르더니 우렁찬 소리를 내며 가속했고, 저는 관성력에 이끌려 삼켜지듯 의자 등받이로 밀려났습니다. 기체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도약했고 공항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비행기의 작은 창으로 제가 살고 있는 도시가 비집고 들어옵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지역 연고지 야구팀의 구장이 보입니다. 딱 한번, 초등학교 때 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팀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부상으로 마운드를 내려가야 했습니다. 야구를 잘 모르는 어린 저도 알만큼 유명한 선수였는데 아쉽게도 한동안 마운드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빌딩들이 거리에 빼곡히 서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도 지나쳤을까요? 지나쳤다 해도 알아채지는 못했겠지만요.


육지는 모습을 감추고 진한 감청색의 바다가 창으로 밀려들어옵니다. 비행기가 이제 제법 높게 올라갔는지 희끗희끗한 구름 덩어리들이 떠있고 그 틈새로 하얀 선을 남기며 움직이는 배와 작고 큰 섬이 보입니다. 남해의 섬은 이대로 보내기 아쉬운지 한동안 창으로 계속 머리를 내밀며 따라왔습니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바다는 파도가 일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얀 물거품은 부서지지도 새로 생기지도 않고 굳은 듯이 그대로 있어서 바다가 얼어붙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파도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저는 높은 곳에 있었나 봅니다.


친구 한 명은 볼일이 있어서 저녁 비행기를 타고 온다길래 저를 포함한 나머지 세 명이서 먼저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저보다 30분 늦은 비행기를 탔던 친구는 우연히 같은 비행기에서 대학 동기를 마주쳤습니다. 그분은 오늘 저녁은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길래 같이 저녁을 먹는 것이 어떻냐고 저희가 제안했고,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저희 네 명은 함께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녁의 메뉴는 곱창전골입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알아낸 제주도의 맛집이었습니다. 위치도 공항으로부터 멀지 않아 첫날의 저녁으로 적절하다 생각했지요. 갈비 전문점이지만 곱창전골이 유명한, 묘한 식당이었는데 입소문을 탄 곳이라 웨이팅을 각오했지만 다행히 저희 네 명을 위한 자리는 있었습니다.


전골은 달고 맛있었습니다. 인위적이고 자극적인 단맛이 아니라 계속 숟가락이 향하는, 은근한 중독성이 있었습니다. 안에 들어있는 곱도 두툼한 것이 이래서 맛집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제주도에 왔으니 또 한라산을 마시지 않을 수 없겠죠. 숙소에 가면 밤새 또 술잔을 부딪칠 예정이니 반주 느낌으로 가볍게 마셨습니다. 전골을 어느 정도 비우고 난 뒤 밥까지 야무지게 볶아 먹고 가게를 나왔습니다.

전골과 볶음밥 그리고 지저분한 식탁


식사를 마치고 나서 동기 분을 다시 공항으로 데려다줬습니다. 저희는 애월에 계속 머무를 예정이었고 그분은 동쪽으로 갈 예정이라길래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마지막 친구가 제주도에 도착하기까지 약 한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저희는 구경도 하고 안주거리도 살 겸 동문시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처음 시장에 갔을 때는 너무 늦게 왔나 싶었습니다. 문을 닫은 점포가 많았고 사람들도 거의 없었거든요. 어쩔 수 없는 건가, 하며 무턱대로 돌아다녔는데 놀랍게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동문시장 야시장이라는 곳이었는데 딱 봐도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즐비해 있었습니다. 랍스터, 버터 문어 구이, 전복 볶음밥 등 군침 도는 것들로 가득한 거리에서 눈과 코를 호강할 수 있었습니다. 야시장을 구경하기 앞서 저희는 일단 수산시장으로 가 안주거리로 쓸 회를 먼저 샀습니다. 시장이 곧 문을 닫을 때라 터무니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아주 많은 양의 회를 살 수 있었답니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고등어 회랑, 돔, 광어, 그리고 딱새우도 샀습니다. 친구들은 딱새우와 고등어 회를 엄청 좋아하더군요. 저는 딱새우는 맛있었지만 비위가 약한 탓인지 고등어 회는 조금 비렸습니다.


회를 사고 나서 저희는 야시장 음식을 맛보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전복 볶음밥과 랍스터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볶음밥 줄은 너무 길어서 랍스터로 결정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짧지 않았지만 랍스터를 조리하는 과정을 보고 있으니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토치로 불을 지펴 치즈를 녹여내는 것이 아주 군침도는 광경이었지만 이 정도 시간을 기다리고 이 정도 금액을 지불하면서 까지 먹을만한 음식은 아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친구 녀석의 뒷모습

9시쯤 공항에 도착한 친구까지 태워서 숙소로 향했습니다. 숙소 복층이었는데 시설이 무척 좋았습니다. 방이 두 개에 화장실도 두 개라서 저희 네 명이 머무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지요. 1층에 편의점이 있는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간식이나 술이 필요하면 바로바로 살 수 있어서 머무르는 동안 애용했답니다.

1층 편의점의 주인들(?)
내려오는 친구 녀석의 다리가 보이는군요


짐을 풀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상을 차렸습니다. 시장에서 사 온 회, 편의점에서 산 술과 과자를 보기 좋게 배치했습니다. 취기가 오르기 전에 까먹지 않고 다음날 들를 곳과 먹을 것을 정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전날 밤에 다음날 일정을 계획한다는 점에서 통했습니다. 관광보다는 맛있는 걸 먹고 경치 좋은 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목적인 여행이었기에 그 취지에 맞는 장소들로 경로를 정했습니다. 어느 정도 계획의 윤곽을 잡고 나서 본격적으로 먹고 마시며 수다 떨다가 늦은 새벽에 돼서야 잠들었답니다.

동문시장의 향기


- 제주도 여행기 #2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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