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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감 Feb 03. 2021

아홉 번째 수필

겨울철 한정 호떡 사건 - 2020.12

얇은 외투를 두 개 껴입는 것으로 충분히 견딜 수 있을 만큼 오늘은 날이 따듯했다. 근래 중에 기온이 가장 높았고 바람은 외투 사이사이를 시원하게 스치는 정도로 불고 있었다. 일부러라도 약속을 잡아 오랫동안 밖에 머무르고 싶어 지는 그런 날씨였다.


겨울의 단점을 꼽으라면 역시 혹독한 추위라고 말하고 싶다. 밖을 나가야 할 이유가 있더라도 바람에 살이 베일 것 같은 날이면 집을 나서기가 무척 망설여진다. 그런 날이면 현관문을 앞에 두고, 나가야 할 이유의 타당성과 추위로 겪어야 할 고통의 크기를 두고 저울질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예상되는 고통의 크기를 웃돌만큼 외출의 중요성이 타당하지 않다면, 오늘은 아무리 봐도 나갈 날이 아니라며 스스로를 설득해 따듯하고 아늑한 집에 머무르길 택한다. 물론 오늘은 저울을 꺼낼 필요도 없이 화창하고 따듯해서 겨울의 단점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따듯한 날씨를 만끽하며 걷는 중에 길 건너편에서 호떡을 팔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 끼도 먹지 않아서 허기진 상태였는데 현수막에 적힌 호떡이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끈적하게 떨어지는 꿀이 상상되면서 참을 수 없게 호떡이 먹고 싶어 졌다. 갓 구워진 것으로 보이는 호떡이 먹음직스러웠지만,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가던 길이었기 때문에 일단 도서관부터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호떡을 사자고 타협했다. 음식물을 들고 도서관을 가는 것은 민폐니깐. 하지만 이때는 알지 못했다. 이 타협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도서관은 저번 달 말미부터 공사 중이라 1층 현관은 쓸 수 없고 2층 현관을 이용해야 했다. 어차피 가려는 곳이 3층이어서 1층으로 들어가 두 층을 올라가는 것이나 2층으로 들어가 한 층을 올라가는 것이 겪어야 할 계단의 수는 큰 차이가 없었다. 도서관은 작가 이름순으로 정리되어 있는데 책이 많아서 처음 본 작가라면 찾는데 제법 시간이 걸린다. 분명 규칙성 있게 잘 정리된 것일 테지만 나는 아직도 그 규칙을 완벽하게 파악하진 못해서 종종 작가의 미로에서 헤매곤 한다. 도서관 문턱이 닳도록 방문했는데 아직도 모르다니. 도서관이 섭섭하다고 말해도 할 말이 없는 입장이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지난번에 빌린 책의 작가가 쓴 다른 작품이어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도서관을 나와 호떡을 향해 걸어간다. 도서관에 가기 전보다 더 배가 고파져서 호떡을 향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세 시를 좀 넘은 시간이었지만 아직 해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어서 해를 마주하면 어쩔 수 없이 눈을 찌푸리게 된다. 나와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는 남자의 눈이 지금 그런 상황인데, 나와 전혀 무관한 사람인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찡그린 표정을 보고 있으면 괜히 내가 뭘 잘못해서 저렇게 표정이 안 좋은가 멋대로 생각하게 된다. 당연히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남자는 나를 지나쳤고, 나의 쓸데없는 걱정도 다음 발을 내딛으면서 잊혔다.


간식거리를 사러 가는 길에 이렇게 두근거리는 자신을 보면서 최근에 읽고 있는 소설의 여주인공이 겹쳐졌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시민 시리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인 '오사나이 유키'. 고등학생처럼 보이지 않는 작은 키와 단정한 보브컷으로 묘사되는 그녀는 디저트를 무척 사랑하는 소녀이다.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동네의 모든 디저트 가게와 그곳의 대표 메뉴의 목록을 작성하고 일일이 순위를 매겨 찾아갈 정도로 디저트에 한해서는 언제나 진심인 인물이다. 시리즈를 구성하는 책의 제목에 전부 디저트가 들어가는 것, 예를 들어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 그리고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같이 계절과 그 계절에 어울리는 디저트로 제목을 지은 건 '오사나이 유키'의 지분이 클 것이다. 다음 책은 어떤 디저트가 들어간 제목일까. 나라면 역시 '겨울철 한정 붕어빵 사건'으로 지으려나. 오늘은 붕어빵이 아닌 호떡이지만.


대로변에 주차된 트럭에 마침내 도착한 나는 한창 호떡을 굽고 계신 아주머니께 주문했다. 두 개면 충분하겠다고 머리로 생각하면서 입 밖으로는 세 개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는데, '과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 찰나에 이미 아주머니는 호떡들을 종이봉투에 옮겨 담으시고 내게 건네주셨다. 하지만 종이봉투를 건네받은 직후, 봉투 너머로 전달되는 차갑고 딱딱한 감각은 분명 내가 상상하던 것과 다름을 알 수 있었다. 호떡들은 진작에 구워진 채 진열대에 놓여 있었는데, 플라스틱 보관함이 온기를 지켜주진 못했는지 열기를 거의 빼앗긴 채 미약하게 시들어가는 온기만을 품고 있었다. 갓 구워져서 반죽도 촉촉하고 그 속을 채운 뜨거운 꿀이 흘러내리는 상황을 기대했지만,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먹어보지 않아도 내가 원하던 맛이 아니란 건 불 보듯 뻔했다. '호떡'이었던 단단한 반죽 덩어리들을 손에 쥐고 돌아가는 길이 퍽 씁쓸하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호떡에 대한 애정도를 검토할 것이다. 오늘의 사건이 시간의 흐름으로 미화되기 전까지는 저 트럭을 찾는 일은 없겠지. 언제, 어디서 다음 호떡을 맛볼지 모르지만, 오늘의 평가를 뒤엎을 만큼 괜찮은 녀석을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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