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꼬치 먹으러 가자."
이번에 졸업한 친구가 대뜸 그렇게 말했다.
양꼬치는 무슨 양꼬치야.
"그냥 먹고 싶어 졌어. 시간 돼?"
"시간이야 되지만 지갑이 허락해 주려나. 매월 초에 가장 얇거든 내 지갑. 길거리에 파는 염통 꼬치도 마음 놓고 못 먹겠구만 양꼬치는 무슨."
졸업하는 기념으로 네가 사는 거냐고 물어봤다.
"나도 졸업 처음 해봐서 그런데, 원래 졸업하는 사람이 사는 거야? 보통 주변에서 축하한다고 대접해주는 분위기 아냐?"
궁금해서 묻는 건 확실히 아닌 것 같고 날 면박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느껴진다.
"나도 몰라. 난 아직 졸업까지 한참이야."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용돈을 받기 전, 월급이 들어오기 전은 늘 힘들다. 끼니를 때울 때마다 가격표와 통장 잔고를 번갈아 확인해야 하는 자신이 가여울 지경이다. 이맘때쯤 되면 항상 생각한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가격표를 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매월 초만 되면 떠오르는 장래희망, '가격표를 안 봐도 되는 사람'.
"내일 만나기로 했는데 진짜로 안 나올 거야? 다른 애들은 다 오는데."
가깝지 않은 사람한테는 돈이 없어서 못 간다는 진실은 쏙 빼놓고, 이러쿵저러쿵 둘러대거나 거짓 핑계를 대며 갈 수 없는 이유를 늘어놨을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동정받고 싶지는 않다는, 내 좀스러운 고집 때문이다. 돈이 없다는 이유를 듣는다고 모든 사람이 동정하는 것도 아닐 텐데 괜히 혼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알지만 쉽게 고칠 수 없는 내재된 방어기작이랄까.
솔직한 이유를 들은 친구들은 오히려 돈은 걱정하지 말고 와라, 우리가 대신 낼 테니 나중에 갚으면 된다고 얘기하며 나를 설득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해준 말씀을 떠올린다.
돈이 없으면 빌리지 말고 굶어라 아들아.
어떤 상황이었길래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했었지. 잘 몰라도 돈에 관한 얘기를 하던 게 아니었을까. 그때 아버지의 눈은 나를 향해 있었지만 시선은 나를 통과해 과거의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지난 경험을 등에 업은 무거운 단어들을 뱉어냈다. 단어들은 아버지의 입을 튀어나와 가슴팍 언저리를 맴돌다 무게를 못 이기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친구에게 아버지가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못 갈 것 같다고 말하진 않는다. 비슷한 상황마다 매번 이와 같은 이유를 대며 설명하는 자신도 입이 아프고 상대방도 이렇게 구구절절한 이유를 듣고 싶진 않았을 테니 "미안, 지금은 여유가 없어. 이번엔 너희끼리 먹어."라고 말할 뿐이다.
친구는 아쉬워했지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더는 물어보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졸업 축하한다. 이제 학식도 다 먹었네."
친구는 이제 취준생이라며 푸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나는 한동안 묵묵히 그걸 듣고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