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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감 May 04. 2022

신병을 기다리며

길을 따라 좌우로 밝게 피어오른 철쭉을 보고 있으면 이곳에도 완연하게 봄이 물들었음을 깨닫는다. 최근 우연한 기회로 다른 부대들을 몇 군데 가봤지만 우리 대대만큼 꽃나무가 화사하게 뒤덮은 곳은 없었다. 볕을 받으며 멍하니 산책해도 좋을 만큼 지금 우리 대대는 아름답다(물론 바깥세상은 더 아름답다).


하지만 위병소의 새벽은 여전히 쌀쌀하다. 푹신하지만 12시간 이상 앉아있으면 허리가 얼얼한 의자 위에서 졸면 안 되지만 목이 아플 만큼 꾸벅꾸벅 고개를 좌우로 휘저으며 밤을 보냈다. 부관님이 순찰을 돌고 가셨으니 이제 더 이상 순찰은 없을 거라 짐작하고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청했다. 변칙적으로 새벽 4시가 넘어서 사령님이 오실 줄은 몰랐지만.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시며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더 고생해,라고 말씀해주시는 그날의 당직사령님은 마음씨가 선한 분이셨다. 경우에 따라서 근무태만이라며 엄하게 꾸짖는 분도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근무 중에 조는 것은 분명 근무태만이 맞다).


지난달은 분리수거 담당인 덕에 초병 근무라든가 위병조장을 모두 빠져서 한 달 만에 들어가는 근무였다. 이제부터는 정상적인 주기로 위병 조장은 2주에 한번, 초병 근무는 일주일에 4번 정도 투입될 텐데 중대 인원이 모자란 탓에 굉장히 타이트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선임들은 얘기한다. 후반기가 끝나고 이곳에 전속 왔을 때만 해도 40명은 거뜬히 넘었는데 지금은 25명 정도니 숫자만 놓고 봐도 적지 않은 차이다. 다만 나와 내 동기들은 신병보호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근무에 투입되는 시점부터 지금과 같은 주기여서 특별히 힘들다 생각하지 않았다. 선임들이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인원이 너무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걸 듣기 전까진 ‘군대가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지냈다.


나와 같은 유류관리병(22년도부터는 에너지 관리병이지만) 후임이 안 들어온 지 어느덧 5개월이 넘었다. 혹한기가 끝난 3월 초만 하더라도 신병이 오길 손꼽아 기다렸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기약 없이 길어지니 이제는 오히려 신병이 오면 당황스러울 것 같다. ‘뭐야, 우리도 신병이 오긴 오는 거였어?’. 훗날 우리 중대에 올 신병들 입장에선 늦게 올수록 좋을 것이다. 바로 윗선임인 우리랑 벌써 6개월 차이가 나니 우리만 집에 가고 나면 왕고 생활을 오래오래 할 것이다. ‘잘 풀린 군번’은 이런 걸 두고 얘기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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