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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감 May 15. 2022

외출

입대하고 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갔던 외출은 작년 12월이었다. 입대한 지 두 달이 조금 넘은 때였다. 여전히 이등병이었고 자대에 온지는 한 달도 되지 않은 파릇파릇한 신병이었다. 당시의 최고참이고 분대장인 선임이 상향식 일일결산을 하러 우리 생활관에 자주 왔었는데 그때마다 몇 마디씩 주고받다가 친해져서 같이 외출할 만큼 가까워졌다. 아니, 사실 ‘같이 외출하다’보다는 ‘나 이번에 외출하려는데 너 데려가 줄까?’에 가깝다. 후임병들은 외출 시 상병 이상의 선임병이 반드시 동행해야 했기에(군대의 룰인지 우리 중대의 룰인지는 모르겠다) 후임병들은 외출하려면 선임병과 친해져서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외출을 제안받은 나는 신이 나서 외출 종합 서류에 이름을 올렸다. 갔다 온 후에 흥분이 가라앉고 생각한 것은 당시 너무 눈치 없이 막무가내로 이름을 올린 것 같다는 점이다. 부대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 외의 것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은근한 핀잔과 눈치를 주는 선임 덕에 그런 점을 인지할 수 있었으나 후회하진 않았다. 우리가 외출한 다음날부터 곧바로 다시 외출이 막혔기 때문이다. 어쩜 이리 기막힌 타이밍이.


외출 인원들 전부 대대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같은 곳에 내려 각자의 목적지로 흩어졌다. 복귀할 때도 마찬가지로 정해진 시간까지 정해진 장소로 돌아와서 버스를 타야 한다. 주어진 4시간을 최대한 밀도 있게 활용하기 위해 우린 곧바로 밥을 먹으러 갔다. 군대에 있으면 날 것, 생 것을 먹을 기회가 없기 때문에 밖에 나왔을 때 회와 초밥을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군복 입은 남자들 넷이서 평일 저녁 초밥 뷔페에 자리 잡았다. 한 명은 상병, 한 명은 일병 그리고 나와 내 동기는 이등병 약장을 달고 있었다. 이등병 약장을 최대한 안 보이게 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자신이 전역하려면 다섯 계절은 더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 게 되는 것도 싫었고 얕보이는 것 같아서 싫었다. 그래서 상병 약장을 붙이고 있는 선임이 굉장히 부러웠다. 상병 약장만 놓고 보면 이게 1호봉인지 6호봉인지 알 수 없으니 사람들은 그저 ‘짬밥 좀 먹은 놈이구나’ 하고 넘어가니깐 말이다. 게다가 실제로 집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더 부러웠다.


디저트까지 원 없이 먹어치우고 나서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볼링장으로 갔다. 살면서 두 번째로 가는 볼링장이었는데 이번에는 초심자의 행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친구들과 처음으로 갔던 볼링장에서는 공을 적당히 굴리면 핀이 알아서 자기들끼리 부딪혀 죄다 쓰러지곤 했는데 두 번째는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평소 즐기는 스포츠는 아니지만 그냥 부대 밖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다.


우리를 데리고 나갔던 그 선임은 한참 전에 전역해버렸지만 어느덧 내가 선임병의 위치가 되어 타인의 인솔 없이도 외출을 나갈 수 있게 됐다. 기회가 없어서 여태 나가지 못했지만 다음 달이면 제한이 풀리고 바깥구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게 되면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고 싶다. 이곳에 있으면 날 것만큼이나 귀한 게 숯불에 구워 먹는 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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