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아이들에게 대학을 강요하지 않은 이유.
대학을 가는 것은 인생에서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니라는 것.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늘 말한다.
“가장 좋아하는 걸 선택해. 그걸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성공이야.”
나도 학교는 졸업했지만, 신설 학과라 학점 이수가 1년 동안 인정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원하면 1년을 더 다닐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이미 그 과에서 가장 먼저 취업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냥 사회로 뛰어들었다.
그때는 공부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배움은 평생 가는 거였다.
학벌이 없어도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배우고 나아갈 수 있는 시대.
결국 나는 나중에 부족했던 공부를 채워 4년제 학사까지 이수했다.
하기 싫던 공부였는데, 막상 하고자 하니 더 욕심이 났다.
배울 게 정말 많은 세상이다.
21살.
졸업작품을 하기 전 나는 취업이 되었다.
이쪽 계통은 페이가 워낙 적었는데,
그마저도 꼼수 부리며 안 주려는 실장들도 많았다.
일을 시켜놓고 돈을 떼먹는 일도 흔했다.
몇 번을 당하고 나니 ‘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른 회사로 옮겼다.
4대 보험 되는 회사.
월급이 매달 꼬박 들어오는 회사.
그곳에서도 나는 정말 잘 지냈고,
평범한 또래 여자들과 다를 게 없었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고,
독립도 하고 싶었고,
취미 생활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생활은 늘 빠듯했고, 여유는 없었다.
엄마는 내가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길 바랐다.
딸이 똑-부러진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으니,
엄마도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바람대로 살 수 없었다.
삶은 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내 인생 툭-부러지게
덜컥 임신을 했다.
내 인생은 결혼 전과 결혼 후로 나뉜다.
그리고 결혼 후의 삶은… 어쩌면 어린 시절의 가난보다 더 지독했다.
그 시절이 꽃인 줄 모르고 봄을 못 누렸다.
다소 충격적일 수도 있고,
다소 울컥할 수도 있고,
다소 우스울 수도 있는
그 결혼생활을
나는 담담히 써 내려가보려고 한다.
결혼은 나에게 꽃피는 봄 일 줄 알았다.
따스해서, 한없이 포근해서
꽃망울이 팡팡 터질 수 있는
그런 봄 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섣부른 선택이었다.
새로운 연재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