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어떻게 끝이 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니기 싫다고 말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몇 번만 가고 그 불쾌한 밀착형 선생과는 어느 순간 자연스레 끝이 났다.
그 뒤로는 줄곧 학원만 다녔다.
우리 집에서 학원까지는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밤 10시쯤 학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과외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돈이 없어 학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나였는데,
어느새 미술학원에 호화로운 개인 과외까지.
사람 팔자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래도 곧잘 따라잡았다.
성적도 많이 올랐고, 그림은 시키는 것만 열심히 그리다 보니 재미는 없었지만 디테일이 조금씩 살아났다.
여름방학 내내 가위에 눌리며 보냈지만,
그 와중에도 모의고사 성적은 야무지게 올려놓았다.
미술은 답이 없는데,
내가 풀기만 하면 답이 ‘딱’ 떨어지는 수학은 그렇게나 매력적이었다.
보통 미대는 수학 점수를 보지 않는 학교가 많지만,
내가 가고 싶던 학교는 수학이 들어갔기 때문에 과외를 했던 것이다.
그 못돼 먹은 학원 강사는 “쓸데없이 그런 학교를 왜 지망하냐”며 핀잔까지 줬다.
폭도 좁은데, 으이그— 하면서.
그렇게 힘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그리고 어느새 11월,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수능 전날,
엄마는 보온 도시락통을 깨끗이 씻어 잘 말려두고 있었다.
내일 반찬을 준비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몸이 이상했다.
잠깐 누우면 괜찮아지겠지 싶어 침대에 누웠고
불안한 마음에 요약 노트를 쥐었다.
하지만 몸은 점점 더 춥고, 식은땀은 흐르고, 이마는 불덩이 같아졌다.
결국 아침까지 몸살로 앓았다.
진통제를 두 번이나 먹어가며.
아침은 찾아왔다.
잠을 잔 건지, 못 잔 건지.
그저 이어진 어제 같았다.
엄마는 새로 밥을 지어 어제 준비해 둔 반찬을 싸고,
뜨끈한 국을 다시 끓여 담았다.
그리고 도시락의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했다.
혹여 힘이 없는 내가 뚜껑을 못 열까 봐.
열었다.. 닫았다..
그런 엄마를 뒤로하고 문을 나서는 순간,
본능적으로 ‘오늘 나는 망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다 쓰라리고 끊어질 듯 아팠다.
정문에 도착해 가방을 들고 도시락을 챙긴 채,
어제 미리 와봤지만 여전히 어색한 학교로 올라갔다.
뒤돌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미리부터 미안한 마음.
우리 엄마가 나 때문에 평생 고생했는데,
오늘 이 하루가 나를 못난 딸로 만들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단정했는지 모르겠다.)
학교에는 언덕이 있었다.
언덕 끝쯤에 다다랐을 때,
이제는 엄마가 보이지 않겠지— 싶어
그냥 한 번 돌아보고 싶었다.
돌아봤다.
무심하게 저벅저벅 올라가는 내 뒷모습만 보였을 엄마는
내가 작은 점이 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 어서 들어가~!”
괜찮긴
뭐가 괜찮아
차라리 "못 보기만 해 봐!"라고 말이나 해보지.
그러면 이렇게 마음이 아프진 않았을 텐데.
그리고 나는 시험장에 들어섰다.
시험지를 받고는
‘이게 뭐지….’
매년 수능이 뒤통수를 친다지만,
우리 세대는 뒤통수를 정말 ‘거하게’ 맞은 해였다.
집에 돌아오니 뉴스에서는 말했다.
“올해 수능, 난도 높은 문제가..."
지금도 엄마는 친정집 코앞에서 버스만 타면
우리 집 앞에 도착하는데도,
꼭 차로 데려다준다.
마흔이 넘은 딸을 말이다.
그리고 꼭 내가 점이 될 때까지 보고 있다
차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