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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매일밤 악몽보다 더 불쾌했던 것

by 이음하나


탑은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급히 쌓은 탑은 아슬아슬하고 금세 무너진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그림도 그려야 했고 성적도 나와야 했기 때문에,

기초가 단단하지 않았던 나는 두 가지를 모두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늘 짓눌렸다.


고3 여름방학 내내,

단 하루도 빠짐없이 가위에 눌렸다.
늘 악몽이었다.


수맥을 찾듯 방을 옮겨가며 잠을 청해봤지만,

악몽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얼굴은 배짝 말라갔고 성격도 날카로워졌다.
그래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미술학원 외에 개인 지도를 받으러 간 적이 있다.

그림이라면 자신 있던 나였는데

학교를 정하고 과를 정하고 대형 학원으로 옮기고 나니

입이 떡 벌어지게 그려대는 게 놀라웠다.


이미 이동거리가 길어 많이 지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학원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은 욕심에

엄마가 내어준 기회를 덥석 잡았다.

마치 그 선생님이 나를 합격시켜 줄 것 같은 희망을 품은 채..

미술학원과 미술 과외를 하는 이상한 입시였다.

첫 수업은 선생님이 집으로 왔고, 두 번째부터는 본인의 작업실로 오라고 했다.


작업실 가는 길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어쩌면 나는 마음속으로 나를 믿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살갗에 닿는 뙤약볕은 칼로 베이는 듯 따갑고 아렸다.

그냥 다 싫었다.


처음엔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 같은 느낌에 싫었고

가장 큰 이유는 불쾌한 과외 선생님의 접촉이었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물감 냄새가 가득했다.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근황을 묻고는 곧 수업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미술 선생님은 학생의 뒤나 옆에서 지도한다.
그 선생도 내 옆에 쓱 앉았다.
코끝을 찌르는 거북한 향수 냄새와 함께.


한여름, 반팔 아래로 드러난 내 가느다란 팔뚝에 자꾸 몸을 밀착시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불쾌함은 뭐지..?


그 후로 몇 번 더 수업을 받는 동안,

팔뚝에서 시작된 밀착은 허벅지도 무릎도 ..

이 더위에 이렇게 가까이 닿을 필요 있나..
내가 몸을 옆으로 빼면, 선생은 어김없이 다시 다가왔다.


어렸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불쾌함을 참았다.
그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었다.





차라리 길에서 만난 변 x였으면 야이 나쁜 x아~!!!!!! 하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친구들과 등굣길에 만난 변 x아저씨를 그 자리서 얼굴이 빨개지도록 혼쭐을 내준 적이 있었으니까.

나를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그 이유 하나로
아무 말 못 했던 것이
그게 더 불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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