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의 가면을 뒤집어쓴 통제의 민낯
여자아이들의 감정싸움은
정말 징글징글하다.
내 아이들이 문제가 전혀 없다고는 못한다.
하지만 꼭 부딪히는 아이들의 유형은
늘 비슷했다.
질투심이 많은 아이들.
나는 아이들을 넉넉하게 키운 건 아니지만,
부족하게 키우지 않으려고 애썼다.
물질적으로도, 사랑으로도.
그리고 무엇보다
선택권과 자유를 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 자유가 다른 아이들에겐
질문이 되었다.
“왜 너는 수학 안 다녀?”
“너네 엄만 공부하라 안 해?”
"너 용돈 얼마야? 달라는 데로 다 줘?"
처음엔 친근하게 다가와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어 곁에 두고 지켜보다가
확인이 되면
곧 질투와 비교로 되돌아왔다.
나는 아이들을 국영수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아이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빵점을 맞아도
그건 내 점수가 아니고 아이의 점수였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고 부끄럽지 않다면,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배우고 싶어 하는 것.
궁금해하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함께했다.
아직 학생이니까,
책임을 부모와 나눌 수 있을 때
마음껏 경험해 보고 실패도 해봐도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양껏 담은 마라탕 한 그릇이 만원이 넘는데
만원 가지고 뭘 하나 싶어
외출할 때는
마라탕 든든히 먹고 인생 네 컷 찍을 정도는
쥐어주는 편이다.
이게 그렇게 욕먹을 일이야?
도대체 얼마를 줘야 알맞은 건지..
그 모습이 다른 아이들과,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에게
이상하게 보였나 보다.
자신들은 아이들을 존중한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그것은 존중의 가면을 뒤집어쓴
통제 라는것.
제발.
내 새끼나 잘 키우자.
누구네 아이 흉보며 모여 앉을 시간에,
내 아이가 질투심에 휩싸여
다른 아이를 괴롭히지 않도록
그 마음에 귀 기울이란 말이다.
밝던 내 아이가 어둡게 변해가던 날.
나는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과
무더기로 마주 앉아 있었다.
나름 자신들도 방어를 하겠다고
우리 아이를 몰아붙이며
온갖 이야기를 꺼내는데
그때 떠올랐다.
아! 그 밥에 그 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