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_나는 추억 속의 기타 소리를 듣는다.

1989년 여름밤의 기타 소리

by 이음하나

매주 월, 수는 막내가 기타를 배운다.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나는 한 시간을 꼬박 벌서고 있다.

시간이 애매해서 어디 갈 때도 마땅치 않고
학원 등록할 때 분명
1층에 카페가 있었는데 문을 닫은 건지
벌써 몇 주째 닫혀 있다.

그래서 근처 공원을 뱅뱅 돌기도 하고
한 10분쯤 걸어 한산한 카페에
딱 커피 한잔을 마시고 일어나서
다시 부지런히 걸어오거나 한다.

아이는 기타를 오래전부터 배우고 싶어 했는데
이게 어느 정도 키도 되고 팔도 길어져야 해서
이제 드디어 때가 되었다 싶어 등록을 했다.

여하튼.
현재 엄청 재미있어한다.

아이가 기타 줄을 튕겨 '드리링' 울릴 때면
어릴 적 그때가 떠올라
가슴이 벅차진다.

내가 6살 집에는 자그마한 마당이 있었다.

여름날 밤 마당에선
아빠가 기타를 연주했고
엄마는 노래를 했다.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옆에 작은 나도 느리지만 천천히 따라 불렀다.

41살 지금도 그때
그 여름밤의 바람과 공기 냄새
아빠의 기타 소리
엄마의 노랫소리까지
기억이 난다.

그게 그렇게도 좋았다.

그래서 아이가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반가웠던 것 같다.

아이는 할아버지에게 배운 걸 보여주고 싶어 했다.

머리가 하얗게 된 할아버지는
손녀딸의 '작은 별' 연주가 신기한 듯했다.

아빠는 노화로 손바닥이 오그라드는 증세가
생겼다.

올여름에 넘어져 수술할 때 처음 알았다.
잔뜩 오므라진 손을 보고 놀랐다.

언젠가 아빠에게

"아빠 요즘 왜 기타 안쳐?" 물었던 적이 있다.
몰랐다. 그땐.

손이 오므라져서 기타가 어색하지만
그 손으로
손녀에게 다정히 답가를 연주해 주었다.

경상도 사나이 아빠는
스물두 살 딸 도시락에 계란프라이를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 시집가던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할 적엔
바르르 떨었다.

나는 아직도 부모님이 천년만년 살 것 같고
우리 아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라고만 생각했지

어느 누가보아도 노인일지 상상도 못 했다.

바람이 있다면,
우리 막내와 우리 아빠가 합주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의 오랜 추억_ 그 여름밤 그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