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의 이런 화려한 과거와 명성에 비해, 요즘에는 그 대접이 영 시원찮은 것 같습니다. 양파를 예전처럼 숭배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그 가치는 인정해 주고 제대로 대접해 줘야 합니다. 여전히 가격도 저렴하고 몸에 좋고 보관도 쉬우니까. 게다가 달궈진 팬에 버터를 두르고 마늘과 함께 볶아 주기만 하면 그 맛과 냄새가 죽이잖아요. 집 안에 들어섰을 때 양파와 마늘 볶는 냄새가 나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냄새 자체도 좋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저녁 식사를 맛있게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어서 더욱 좋습니다. 무슨 요리를 하고 있을지 맞추는 재미도 있습니다. 속을 듬뿍 채운 만두, 소시지, 카레 볶음밥 등 다양한 요리가 가능합니다. 요는 집 안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는 거죠.
- 마늘과 양파 볶는 냄새 中-
[행복 한 스푼. 닐 파스리차]
면 소재지인 시골에 태어났다. 고등학교가 시내에 있어서 선택권 없이 유학을 떠나야 했다. 그 덕에 어린 나이부터 자취를 시작했다. 1학년 때는 집에서 등하교를 하고 2학년 때부터는 그 생활도 너무 고되고 힘들어서 학교 옆 작은 자취방을 얻어 개나리 같은 노란 커튼을 달고 시작했다. 새간 살림을 주전자부터 침대까지 다 들여놓으니 돈도 참 많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끼니가 걱정된 부모님은 학교 옆 작은 식당에 달로 아침을 먹을 수 있도록 티켓을 끊어주셨다. 2학년 때부터는 학교에서 급식을 시작해 점심 저녁은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집에서는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주말이나 일찍 집에 올 때는 집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농사짓는 부모님 덕에 초등학교 때부터 맛있게 밥 하는 건 마스터하고 간단한 요리 정도는 해 먹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음식이 양파 볶음이었다. 그 당시 맛있는 굴소스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기에 간장으로 불맛을 살려 더 맛있게 볶을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혼자 음식을 만들어서 혼밥을 하는 건 그때부터 익숙해진 터라 외롭진 않지만 제일 그리운 밥은 온 가족이 한 상에서 밥을 먹는 그 순간이었다. TV 속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같이 하는 장면, 맛있는 음식을 두고 알콩달콩 맛있게 먹는 장면, 호 호 불며 뜨거운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며 가끔 눈물이 나기도 했다. 정이 그리운 식사였다. 그러다 주말에 고향집으로 가면 다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 당시 자취하는 친구들은 주말이 지나면 자기들이 먹었던 것을 자랑삼아 얘기했다. 갈비를 먹었다. 잡채를 먹었다 등 잔치음식 정도의 먹거리를 자랑했다. 농사짓는 부모님 덕에 갈비, 잡채 등의 거창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소박하게 텃밭의 고추, 오이를 막장에 찍어 먹거나 양파나 가지를 볶아 먹을 땐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그때의 그 냄새가 기억에 난다. 여전히 양파볶음, 가지볶음, 표고버섯 볶음이 소고기 볶음보다 좋다. 그 바쁜 농번기에도 엄마는 우리를 위해서 삼시 세 끼를 다 챙겨주신 것만으로 감사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하고 있는 지금 삼시세끼 다 잘 차려서 먹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것 같다.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나에겐 좋은 사람과 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 시간이 가장 큰 반찬이다.
[반찬]
밥에 곁들여 먹는 음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