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가면 우선 양말을 벗기 시작한다.
보통 사람들이 집에 들어오면 외투를 벗기 시작하는 것과 달리 우리집에서의 순서는 양말을 벗는 걸 우선한다. 그것이 우리집의 룰이다. 우리집은 실내용 슬리퍼도 별도로 없다. 양말 다음에 외투를 벗으며 옷방으로 향한다. 옷방에서 실내용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서야 거실에 앉을 수 있다. 이것은 매일 같이 이루어지는 집에 들어온 뒤의 의식같은 것이다. 양말을 벗지 않는다고 대단한 일이 일어나거나 하진 않는다. 그저 양말바닥에 보송한 털이 가득 붙을 뿐이다. 낮동안 그러니까 인간들이 집을 비운 동안 고양이들이 뿜어낸 털들이 말이다.
우리집엔 동거중인 고양이가 3마리 있다. 게다가 모두 흰털과 노랑털의 비율이 대략 7:3 정도로 브라이트닝 지수가 높은 높은 치즈들이다. 우리집 바닥은 밝은색 강마루라서 육안으로는 털이 잘 보이지 않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녀석들의 그 날 활동량에 따라 집에 돌아온 우리의 양말 바닥 상태가 정해진다. 집에 들어와 입구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옷방으로 가는 걸음걸음 털이 놓여있고 양말은 부숭부숭해지는 것이다. 바로 이런 문제때문에 세탁기는 10년을 꼭 채우고도 넘은 통돌이를 사용하면서 신상 건조기를 들여놓게 되었다. 건조기가 고양이털을 그렇게 잘 털어준다해서.
실내용 옷은 잠옷이 아니다. 잘 때 입는 옷과는 또 구분이 되는 옷을 의미한다. 실내용 옷은 고양이 알러지도 심하고 블랙웨어 매니아인 집사의 자구책이다. 나는 고양이와 한공간에서 잠들 수는 없는 가련한 알러지 보유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거실에서 쓰러져 잠든 날엔 예외이다. 너무 피곤해서 거실 매트위에 쓰러져 잠든 날엔 고양이 털이 간지러운 줄도 모르고 곯아떨어진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아침 얼굴에 근접해있는 4호의 동공과 높은 확률로 마주치고, 우렁찬 야옹소리를 듣게 된다.
아무튼 다음 순서는 거실창을 열어 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 청소기를 들어 스크래쳐 부스러기 같은 것들을 청소한다. 여기까지 마치면 바닥 혹은 의자에 엉덩이를 내려놓을 수 있다.
이 상태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지만 집사는 한가지 중요한 절차가 더 남아있다. 요즘은 대부분의 날들을 다른집사가 해주긴 하지만, 고양이들의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다. 그렇게 야무지게 맛동산과 감자를 캐어내어 버리고 나면 자, 이제 나도 좀 쉬어야겠다.
아- 아니다. 한가지 더 남은 일이 있다.
그건 집사 엉덩이가 바닥에 닿자마자 달려와 '나를 만져라'하며 울어제끼는 고양이들을 다독여주는 일이다. 이것은 고양이가 질릴 때까지 해야하기 때문에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대체로 거의 대부분 중간에 포기하게 되고만다.
고양이와 산다는 건 참 고단한 삶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나에게 고양이를 키우겠다 말하면, 대체로 반대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함께하겠다는 걸 말리지는 않는다. 애정이란 건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니까.
어쨌든 고양이는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귀여우므로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