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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May 02. 2021

하루의 끝에서


지금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은 침묵이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과 강인한 사람은 침묵을 통해 휴식한다.

'에고라는 적', p55



주말 출근을 했었고, 서로 바빠 근래에 자주 못 만나는 오랜 친구에게 톡으로 하소연을 시작할 참이었다. 서로의 시시콜콜한 사연들을 대부분 알고 있고 누구보다 쓸데없고 시답잖은 농담만을 주고받지만 문자로 전해지는 말들의 끝에도 우울이 서려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힘듬을 토로해도 그깟게 뭐냐고 위로의 말 대신 핀잔을 주곤 하는 친구.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여전히 쓸데없는 말을 굳이 길게 길게 늘어놓고 있던 중에 발견한 글귀였다. 문득 내가 어른스럽지 못하게 필요 이상의 소란을 떨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 속 저 말이 인생의 정답은 아닌 것을 알면서도 나는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우울감이 밀려왔다.

책을 정말 좋아하지만 가끔은 책 속의 멋진 말이 나를 아프게 하기도 한다.




실마리는 언제나 내 안에 있다. 회사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수시로 변한다. 변화를 마주하고 힘든 시기에 회사 탓도 해보고 내 탓도 해보면서 알게 된 건, 변한 환경 탓을 하기에 앞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편이 좋다는 사실이다. 결국 우리 마음을 힘들게 했던 건 변한 환경이라기보다 어떤 시도도 해보지 않는 수동적인 자세였다.

'프리 워커스' 중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홀딩되었다. 진행하는 프로젝트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름의 애착이 있는 프로젝트이기도 하고, 그 때문에 야근을 강행하던 중이어서 현실적으로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쓰렸다. 내가 리딩을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밀려들어 자꾸만 내 안으로 향하는 가시들을 피할 길이 없어서 마음이 많이 아프다. 내가 좀 더 노련하게 대처했다면 괜찮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TCI검사라는 것을 해본 적이 있다. 심리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던 지인을 통해 진행하게 되었던 검사다 보니 상담자가 나를 이미 겪어본 상태였다. 상담자가 의아해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 내 기질 중 안정 추구에 대한 부분이 꽤 높다는 것이었다. 평소의 내가 변화를 좋아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며 내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늘 트렌디한 것들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대답해주었다. 변화도 새로운 것도 좋아하지만 그것의 처음을 많이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것을 극복하면 시작이 가능한 상태가 되어 뭐든 시작하지만 간혹 두려움에 움찔거리게 되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게 되어버리는거고.

나는 여전히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수용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틀렸다.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처럼 꾸준히 계속 잘... 되기만을 바랬던 것 같다. 

겁쟁이였다.



죽은 시간은 사람이 수동적으로 무엇인가를 기다리기만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고, 살아있는 시간은 무엇이든 배우고 행동하며 1분 1초라도 활용하려고 노력하면서 보내는 시간이다. 당신이라면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에고라는 적', p235




예전의 나는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일을 빠듯하게 마친 뒤에도 지친 몸으로 지하철에 싣고 서울의 정반대 편까지 가서 취미 생활을 하거나 업무와 관련된 세미나를 듣거나 스터디에 참여했다. 대단한 결과물 같은 게 없어도 괜찮았다. 그저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나는 마음은 있지만 체력도 시간도 없다는 핑계를 대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회사일만으로도 엄청나게 바쁘고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일들은 나를 소모하는 일이다. 내 안의 많은 것들을 끄집어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예컨대 재능도 지식도 열정도 한정된 자원이라서 채워 넣지 않으면 무한하지 않다. 영감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번 아웃될 게 뻔한데, 아니 어쩌면 이미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는데.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니 가는 건 무의미하다'라는 생각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지만 가보자'라는 생각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츠츠키 쿄이치 '권외 편집자'중



사실 그동안의 나는 내가 경험에 투자하는 중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경험보다는 실물에 투자를 하는 시절에 살다 보니, 문득 내가 잘못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더욱더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내가 틀렸다는 생각 때문에 한걸음도 뗄 수가 없다. 어쩌면 무기력한 학습 효과도 그것에 한몫을 하고 있다. 소비에 대한 대가 혹은 배움에 대한 결과를 원하다 보니 예전처럼 쉬이 배움에 접어들지 못했다.  자꾸만 본전 생각이 난다. 이거 배워봤자 이런 거겠지 뭐.. 하는 마음이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한 걸음이 필요하다.




비관은 기분이지만 낙관은 의지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좋은 말을 듣거나 읽고 성찰을 하지만 나는 여전히 모자라고 대부분 형편없이 살아간다. 때로는 의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는 것이다. 힘든 상태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따뜻하게 건네는 괜찮냐는 말을 들으면 눈물이 차오른다. 요즘이 그런 날이었다. 말없는 위로가 필요한 밤이다.




매일매일 잊지 않고 다짐을 해야겠다. 

삶의 밸런스를 놓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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