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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Nov 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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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조각모음 #17 아침



그가 또 내게로 돌아왔으니... 연우는 얼굴을 들고 제이와 마주했다. 제이의 가늘고 하얀 손이 연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창문 사이로 파란 가을이 스며들어왔다. 연우의 머릿속에는 어제 들었던 ' All the Things You Are '가 플레이되는 중이었다.















제이는 주방 냉장고에서 달걀을 꺼낸 뒤 탁-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냉장고 문을 닫고 있었다. 얼음이 없어 어제의 연우로 하여금 결국 그를 마주하도록 만든 그 문제의 냉장고였다. 2구짜리 인덕션 위에는 두 명 분량의 라면을 충분하게 끓일 수 있는 냄비가 뽀얀 증기를 내뿜으며 끓고 있었다.



"먹을 게 없을 텐데... 라면 정도 있으려나.."

갑자기 배가 고프지 않냐고 물었던 건 제이였다. 

연우는 숙취 때문에 아픈 머리 한 편을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며 어색하지 않은 척 대답했다.


"충분하지." 

라고 대답하고서 그는 연우를 소파에 앉혀둔 채 주방과 거실의 경계는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주방인 공간에 들어섰다.

소파에 가만히 앉은 채로 연우가 "아마 위쪽 선반에 보면 있을 거야."라고 다시 말했다. 

연우는 바닥에 멋대로 흐트러진 캔을 치워야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시선이 그에게서 거둬지질 않았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 라면이 두 개 선반에 있었다. 라면 봉지를 반대로 뒤집자 누군가의 고민이 담겨있을 조리법이  친절하지만 간결한 말투로  적혀있었다. 그는 조리법을 한 번 눈으로 천천히 읽은 뒤 생수를 냄비에 콸콸 소리 나게 쏟아 따른 뒤 인덕션에 올렸다. 그는 조금 헤매는 것 같더니 바로 스위치를 찾아 버튼을 누르고 라면 봉지를 열어 두 종류의 수프를 조심스레 꺼내놓고  남은 면을 한 차례 반으로 갈랐다.

소파에 앉은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연우는 그 일련의 동작들이 꽤나 침착하고도 진지해 보여서 도와주겠다는 말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마치 원래 그 주방을 사용하던 사람인 것 마냥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제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까 그건 뭐였을까? 

연우는 눈으로는 그의 행동을 쫓으면서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의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고 있었다.

그가 눈앞에 나타난 뒤로 자꾸 감정 조절에 실패하고 있는 것 같았고 눈물이 나올 거라고  인지하기도 전에 눈에서 방울방울 떨어져 버린 눈물처럼 자꾸 차오르는 감정을 어찌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민망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한 이상하고 복잡한 감정이었다. 


그런데 그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마치 뭐라도 알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 뒤로는 또 아무런 이유도 단서도 붙이지 않았고 더 이상의 설명도 그는 하지 않았다. 

끝을 흐리던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말없이 그저 아이를 달래듯 연우의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내리던 눈이 그치듯 자연스레 눈물이 멈춘 연우를 보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배고프지 않아?" 라고 너무도 태연하게 연우에게 물어왔다. 연우는 마치 자꾸 일시 정지되는 드라마를 보는 것 만 같았다. 그리고 제이는 지금 연우의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자꾸 생각을 해서 그런지 안 그래도 술 때문에 무거운 머리가 더욱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가만히 있기도 그렇다고 뭘 묻기도 이상한 불편한 아침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면서.


그 사이 그는 다 끓여진 라면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덜어먹을 그릇까지 차려둔 테이블에 앉아 연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 마주 보고 라면이라니...' 어쩌다 이리됐을까.. 

빨리 내보냈어야 하는데 생각은 하면서 연우는 어느새 의자에 앉아 얼떨결에 덜어주는 라면을 받았다. 

감정이고 행동이고 자꾸만 세상이 제이의 패턴으로  말려드는 것만 같았다. 늘 누군가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그였다. 

별다른 말도 없이 눈앞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제이는 정말 배가 고팠던 것 같았다. 그가 끓여준 라면을 먹어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면서 국물을 한 수저 떠 입 속으로 넣었다.

짭조름하고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자 속이 조금 달래지는 것 같았다. 연우는 어차피 일어난 일 그냥 상황에 맡기기로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리모컨을 찾아 티브이를 틀었다. 티브이에선 아침 날씨 리포터가 오늘의 날씨를 브리핑해주고 있었다. 어제와 달리 아주 맑을거라고 이야기하고있다. 블랫아웃 되어버린 어제의 기억도 뉴스에서 브리핑을 해주면 참 좋을 텐데라고 두 입 째 라면을 삼키며 연우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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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근한 매거진}에서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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