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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Dec 15. 2021

ep.30 : 나를 위로하는 메뉴



처음은 그냥 던진 인사 같은 하나의 질문

오늘 저녁 뭐 먹었는데?



러시아워와 맞물린 퇴근길 운전이 지루해지는 순간이 오면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조금씩 어쩌면 괴롭혔다. 가벼운 스몰 톡. 요즘 하는 운동은 재미가 있는지.. 그래서 우린 언제 여행을 떠날 수는 있는 건지.. 오늘 회사에선 어땠는지..그러다가 질문은 점점 오늘과 지금으로 향하고 그래서 너는 지금 뭐하는지 묻는다. 제법 귀찮지만 성실하게 대답하는 저녁 먹고 쉬고 있지라는 친구의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서 저녁 메뉴가 뭐였는데?


나? 엄마가 끓여준 감자국에다가 밥 먹었지.

아... 순간 달큰하고 포슬포슬한 감자의 여리여리한 노란 맛이 떠올랐다. 담백하고  적당히 간이 베인 양파가 가득 들어간 푹 끓여져 몽글몽글한 따뜻한 감자국. 그 맛이 머릿속에 가득히 떠올랐다. 집에 가서 뭘 먹어야 하나.. 오늘은 또 뭘 시켜먹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다.

나도 엄마가 끓여준 감자국이 먹고 싶어 졌다. 감자국과 김치와 밥이면 되는 메뉴. 추운 겨울날과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탄식이 새어 나온다. 감자국...



야아.. 나 감자국 안 먹은 지가 언젠지 모르겠다. 감자국, 무국, 오징어국은 왜 식당에서 안 팔아? 이건 다 집에서만 해 먹는 진짜 집밥 같은 메뉴잖아. 

나는 그날부터 감자국병에 걸렸다. 정확히는 감자국이 먹고 싶은 병이었다.




며칠 뒤 엄마가 주문을 부탁한 물건이 있어 마침 엄마집에 갈 참이었다. 일정을 조율하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감잣국 먹고 싶어. 감자국? 알았어. 그게 뭐라고 먹고 싶냐는 엄마의 시원시원한 대답.


엄마표 감자국을 기대하며 친정으로 퇴근한 날. 엄마는 나를 기다리며 갈치를 굽고 있었다. 

그리고 가스레인지 위에는 보글보글 보글.... 냉이된장국이 끓고 있었다. 힝..


유난히 추웠던 토요일 엄마는 친척 언니네 밭에 가서 싱싱한 냉이를 하루 종일 캐왔다고, 흙을 털고 물로 헹구기를 스무 번도 더했다고, 냉이는 캐는 것까지는 재밌는데 손질은 퍽 귀찮다며 삶아 놓은 냉이를 가져가서 집에서도 해 먹으라고 신이 나서 얘기했다. 고된 얘기를 즐겁게도 하는 엄마에게 아니 나는 감자국이 먹고 싶다고.라고 차마 말하지 못한 채 그럼에도 맛있는 엄마표 저녁을 먹고 냉이나물도 야무지게 챙겨서 집으로 왔다.



이삼일 뒤 회사에 출근해 일하는 데 엄마에게서 톡이 왔다. 

저녁에 감자국 끓여줄까? 

엄마는 잊지 않았구나! 오예~

나 감자국 먹으러 가? 

응.

그날 저녁 퇴근해서 들르니 내가 온다는 시간에 맞춰 새로 한 다시마 밥에 포슬포슬한 감자국이 끓여져 있었다. 별 거 아닌 메뉴도 집에서 가족이랑 먹으면 든든하게 느껴진다. 마법 같은 음식의 힘이다. 게으른 딸은 한 공기 가득 담긴 밥에 국 두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남은 국을 모조리 싸서 집으로 왔다.




문득 출장 간 남편이 돌아오면 그날 저녁엔 무국을 끓여야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래. 무는 역시 겨울무가 맛있지. 이것은 야채파가 고기파를 반갑게 맞이하는 자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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