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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Mar 03. 2021

고양이는 처음이라

사회화가 뭐예요?






노랑이는 그렇게 무사히 아기 냥이 4마리를 낳았고, 산실을 차려주었던 작고 아담한 우리 침실은 그대로 고양이 육아방이 되고 말았다.





어릴 때 살던 집은 개발이 안 되는 그린벨트에 있었다. 요즘이야 아파트 단지 단위로 예쁜 마을 이름도 있고 그렇지만, 동네 이름 같은 건 사치스러울만한 마을일 뿐이었다. 동네 이름이 별도로 없었지만 마을 가운데에 우물이 있어서 우리끼리는 우물 동네라고 통칭했다. 그래서 우물과 가장 가까웠던 집 아줌마의 애칭은 지금도 ‘우물집 아줌마’라고 불린다는 이야기. 아무튼 삼십 년이 넘게 지난 지금은 천지개벽의 수준으로 바뀌어서 신도시 아파트로 변해버렸지만, 응답하라 1988 수준의 그 집들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린벨트인 덕분에 동네에는 여기저기 공터가 있었는데, 동네 아이들은 동네 마당인지 공터인지 모를 공간에서 비석 치기, 사방치기, 해달별 놀이, 다방구 그런 걸 하며 지내곤 했다. (흠흠.. 그렇다. 나는 옛날이야기가 재밌는 라떼가 되어버렸다. 흥! 그래도 마음은 따뜻한 따.라떼인걸로. 훗-)


그때만 해도 동네 개들은 대부분 풀어놓고 살던 시절이었는데, 우리 집에는 요즘 말로 자브 종인 바둑이와 바둑이가 낳은 재롱이, 발바리(당시에는 털이 복슬복슬하고 작은 견종 거의 발바리라고 불렀었다)인 뽀삐도 있었는데, 유일하게 묶어놓은 아이는 투견으로 유명한 도사 견종으로 어린 기억에 소처럼 느껴질 만큼 컸는데, 엄청 순했고. 개집이 어마어마하게 컸기에 당시 세 살이었던 동생은 개집에 들어가 잠들어서 엄마가 한참을 찾기도 했었다. 당시엔 동네 애들이 대충 그렇게 컸다.(참고로 전 서울에만 살았습니다.)

강아지들은 늘 아빠가 어디선가 데려왔고, 풀어키우기에 간혹 잃어버리곤 했는데(유기가 아닙니다. 집을 나간 거예요. ㅠㅠ) 그중 뽀삐는 잃어버렸다가 파출소에서 울면서 데려왔던 기억이 선명하다.

어린 시절 아파트로 이사 가기 전까지 꽤 오랜 시간을 마당에서 토끼도 키웠고, 닭도 키웠고, 어느 날엔 둥지에서 떨어진 참새도 키웠지만, 유일하게 고양이만은 키워본 경험이 없었던 나였다.



우리 집에 고양이가 잠깐 들렀던 아련한 기억은 있는데, 당시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을 하셨는데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아버지 가랑이 사이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구슬처럼 반짝이는 눈을 가진 예쁜 회색 아기 고양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태어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아기 고양이였던 것 같다. 나의 아버지는 엄청 무뚝뚝한 남자이지만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엄마는 아빠가 저질러놓은 일들의 뒷수습을 잘하는 여자였다. 그때도 결국 그런 일이 일어난 것 뿐이었고.

나와 동생은 갑자기 등장한 너무너무 예쁜 생물에 쏙 빠져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집에 넘쳐나는 흔한 발바리나 자브종견들과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보기만 해도 유연함이 느껴지는 세련되고 우아한 생물.

우리는 엄청 만져보고 싶었는데 엄마가 아직 어린데 손탄다고 만지지 말라고해서 방바닥에 내려놓고 지켜만 봤다. 하지만 새로운 공간이 너무 낯설었던 아기 고양이는 가구 아래 틈에 들어가 거의 나오질 않는거였다.

지금 같으면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봤겠지만, 90년대 초반 우리에겐 인터넷이 없었고, 반려동물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설상가상 동생은 알고 보니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었다. 그것도 심하게.

한밤이 지나고 동생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나니 아버지는 안 되겠다며 그 고양이를 당장 다시 데려다주러 가셨다. 하나밖에 없는 소듕한 아들내미의 알레르기란 그런 것.






갑자기 나타나 하룻밤새 홀연히 사라진 그 예쁜 고양이. 너무 작고 여려서 만져보지도 못했던 그 예쁜 고양이에 대한 아쉬운 기억이 있는 나에게 노랑이가 아기 고양이를 4마리나 선사한 것이었다. 

그렇다. 그렇다면 벌써 나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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