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옷이 아닌 '나의 브랜드' 짓기

불안의 폭풍을 지나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적 평온에 이르기까지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

인생의 태풍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휘몰아치는 바람이 잦아들 때쯤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저는 제 생애 가장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 평생을 몸담아온 패션업계에서의 이력, 3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소속’이 사라진 자리는 차갑고 공허했습니다. 매달 통장에 찍히던 급여가 끊기고 명함 한 장으로 증명되던 사회적 위치가 사라진다고 생각하자,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갈피를 잡지 못한 채 90일간을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헤맸습니다. 이직이라는 안전한 항구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거친 파도가 예상되는 자기 사업이라는 망망대해로 돛을 올려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3개월의 태풍은 저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나 자신을 이해하고, 내 안에 남은 미련의 찌꺼기들을 깨끗이 정리하게 만든 ‘정화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귀국과 함께 혼란을 끝내고, 명확한 확신과 함께 새로운 시작의 선 앞에 서 있습니다.


흔들림을 확신으로 바꾼 전략적 통찰


불안의 실체와 거절하지 못한 미련

불안과 두려움의 실체는 명확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단절’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30년 넘게 패션업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톱니바퀴로 살아가며 얻었던 안정감이 사라지자, 저는 마치 보호막 없이 벌판에 던져진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받은 이직 제안들은 달콤한 유혹이었습니다. 익숙한 실무형 관리자의 삶으로 돌아가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시를 내리는 삶은 당장의 불안을 잠재워줄 처방전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면접장에서 만난 한 대표님의 질문이 제 심장을 관통했습니다. “이 정도 해외 현장 경험과 브랜드 런칭 경력이면 본인 브랜드를 하고도 남을 텐데, 왜 굳이 취업을 하려 합니까? 남들에게 없는 독보적인 경력인데 말이죠.”

그 질문 뒤에 숨겨진 차가운 속뜻—‘우리 조직에 들어와 불편한 존재가 되지 말고 당신의 길을 가라’는 거절의 메시지—을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면접보는 시간은 오히려 저에게 ‘오기’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입으로만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 현장의 밑바닥부터 브랜드 기획의 정점까지 직접 일구어온 실무자로서의 자부심이 깨어난 것입니다. “내 일을 하자!”라는 결심은 그렇게 타인의 냉소 섞인 질문에서 싹을 틔웠습니다.

냉철한 데이터가 보여준 제조 대행의 한계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자마자 주변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의류 제품 생산 대행(OEM/ODM)을 의뢰해왔습니다. 30년 베테랑의 안목과 글로벌 소싱 능력을 믿어주신 분들이었습니다. 한두 명씩 늘어나는 오더를 보며 사업이 순조롭게 풀리는 듯 보였지만, 저는 다시 한번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이것이 과연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조 현장의 시계는 시장보다 6개월에서 1년 앞서갑니다. 지금 현장에서 느껴지는 원가 상승의 압박은 실로 상당합니다. 환율은 요동치고 유가는 폭등했습니다. 2년 전과 비교할 때 원가는 이미 30~40% 수직 상승 중이었습니다. 제조업의 생리상 고정환율과 예측 불가능한 물류비용은 수익성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변수가 됩니다. 견적을 내고 마진 구조를 설계해본 결과, ‘수익이 나오지 않는다’는 냉정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타인의 브랜드를 위해 제 모든 인프라와 에너지를 쏟아붓고도 리스크만 떠안는 대행 사업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결정해야 했습니다. 불확실한 남의 사업을 돕느라 에너지를 분산시킬 것인가, 아니면 재고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내 철학이 담긴 내 브랜드에 집중할 것인가. 결론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위해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감정의 정리와 비즈니스 피벗(Pivot)

여섯 군데 회사와 진행했던 생산 대행 상담을 모두 중단했습니다. 그들과의 미팅은 역설적으로 제 상황을 가장 분명하게 인식하게 해준 거울이 되었습니다. 비록 성사된 계약은 없었으나, 저는 그것을 실패라 부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 사업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지불한 ‘가장 값싼 수업료’였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해결책은 단순하고도 강력한 ‘선택과 집중’이었습니다. 널뛰던 마음은 생산제조대행 사업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자 거짓말처럼 차분해졌습니다. 제가 가야 할 길은 명확해졌습니다. 30년 패션 내공을 집약한 저만의 브랜드 런칭, 그리고 제가 가진 지식을 나누는 라이팅 코치 사업, 두 가지 핵심 엔진에 모든 화력을 집중하기로 한 것입니다.


두 개의 엔진으로 나아가는 독립의 길

이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브랜드 런칭의 내실화: 30년 패션 전문가의 고집과 안목을 증명하는 장을 만들겠습니다. 생산 대행을 거절하며 아꼈던 에너지를 오롯이 제품의 퀄리티와 브랜드 스토리를 구축하는 데 쏟겠습니다. 재고의 리스크는 제가 감당하며, 그만큼의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겠습니다.


라이팅 코치 사업의 확장: 책 쓰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또 다른 사업 모델입니다. AI를 활용한 이북 작성법부터 실무 중심의 지식 공유까지, 제가 겪은 30년의 세월을 텍스트로 치환하여 수익화하겠습니다. 이는 제조업이 가진 리스크를 상쇄해줄 훌륭한 지식 자산 사업이 될 것입니다.


철저한 자기 이해를 통한 의사결정: 앞으로도 수많은 유혹이 찾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내 감정 살피기’를 의사결정의 1순위로 두겠습니다. 제 마음이 불편하거나 수익 구조가 보이지 않는 일에는 단호하게 거절하겠습니다. 자기 이해가 전제된 거절은 더 이상 미안함이 아니라 전략적인 선택이 될 것입니다.

무의미한 과정은 없다, 모든 혼란은 동력입니다

지난 3개월의 폭풍우는 저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제가 서 있는 기반을 더 단단하게 다지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휘몰아치던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의 바다는 더없이 평온합니다. 하지만 평온함 속에는 이전과는 다른 묵직한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제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실수는 받아들이고, 개선하고, 다시 나아가기 위한 데이터로 활용하면 그뿐입니다. 요동치는 과정일수록 배는 더 빠르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며, 저는 이제 제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30년 패션 인생의 2막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나의 일’을 한다는 것은 곧 ‘나의 삶’을 산다는 것과 같습니다. 급여와 소속감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이제 이름 석 자로 세상과 마주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평온하든 혼란스럽든, 모든 과정은 제가 성장하기 위한 거름이었음을 믿습니다.

이제, 기쁜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르몽드데지부

#닥책모전자책쓰기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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