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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서 더 단단해진다

기회라는 모습으로

회사의 결정으로 중국에 파견된 날,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비행 출장이 잦았지만 이번 출장 만큼은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6년간 상해 근무 경험이 있다고는 해도 이번만큼은 혼자였기 때문입니다. 가족도, 친한 동료도, 의지할 만한 지인도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낯선 도시의 공항에 내려 짐을 끌고 숙소로 향하는 길, 유난히 공기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2024년 4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국 본사 출장을 갔습니다.

하노이 지사가 접힐 거란 걸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제안을 했습니다. 다시 중국으로 갈 생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조건은 7년 전과 차원이 달랐습니다. 예전에 상해에 근무할 때는 한국인 주재원이 100명 이상 근무했었기에 불안감은 없었습니다. 그 땐 지금처럼 한중 관계가 냉기가 돌때도 아니었지요.

중국으로 이동할 경우, 근무 조건은 상해가 아니라 찌아싱(가흥)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찌아싱은 상해와 항주 중간 쯤 위치한 2선 도시입니다. 사무실 없이 재택 근무하되 직원은 현지 직원 1명 뿐일거라고 했습니다. 찌아싱에는 한국인이 거의 살지 않습니다. 상해에서 6년, 하노이에서 6년 근무가 없었다면 이번 발령을 수락할 수 없었을 겁니다. 다행히 현지인처럼 유창하지는 않지만 영어와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한국 본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도 했고 한국 본사 직원들이 해외주재원 생활을 13년동안 했던 사람을 반길리 없었습니다. 회사에 21년 근무하다 보니, 입사 동기 중에 지금껏 근무하는 동료는 없습니다. 회사를 오래 다녔다는 증거입니다.

중국으로 주재원 발령을 수락했습니다. 이번 발령이 해외주재원으로 마지막 근무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인 커니티가 없는 환경에서 살기란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7월에 찌아싱에 출장을 와서 집을 구했습니다.


"여기는 개발구예요. 아파트들이 새로 지어져서 모두 새집입니다."

부동산 담당자 말이었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끝이 보이지 않는 아파트 대단지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빈집이었습니다. 빈집은 많았지만 내 조건과 맞는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출장 일정이 촉박했기에 마지막으로 본 집을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입주하기로 한 집을 들어가서 보니, 새집이라서 인테리어가 깔끔하게 되어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차라리 조용하게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착하고 나니, 예전 경험과는 다른 새로운 시스템들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인터넷 연결부터 난관이었고, 모바일 결제는 필수였지만 인증 절차는 까다로웠습니다. 식당 메뉴는 QR 코드로만 주문이 가능했는데, 처음엔 QR 코드로 주문하는 방법을 몰라 허둥댔습니다. 예전에 은행에 가서 직접 처리했던 일들도 이제는 앱 안에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변화의 속도는 상상이상이었고, 저는 순식간에 시대에 뒤처진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10월에 발령이 나고, 중국 찌아싱에 임대한 집으로 들어왔지요. 워크퍼밋을 받아야 이사짐 통관을 할 수 있기에 이사짐은 4개월 후에나 받을 수 있었습니다.집은 짐이 없어서 휑했습니다. 입주 했을 때만 해도 살고 있는 아파트 동에 두어 가구만 입주했던 겁니다. 상상했던 거 보다 난감했습니다. 당장 식료품은 어떻게 사야 할지... 급한 일이 생기면 도움을 누구에게 청해야 할지... 집을 잘못 구했나... 후회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예전에 상해에서 근무할 때 동료와 친구들에게 연락했습니다. 7년만에 돌아 온 중국은 상상보다 훨씬 더 빠르고 크게 변화했고 변하고 있었습니다. 어지간한 쇼핑은 모두 온라인으로 하고 택시를 부르는 것도 띠띠(滴滴)라는 한국 카카오택시 같은 걸 이용했습니다. 7년 전에도 띠띠는 사용했었지만 이렇게 완전히 온라인 체제로 바뀌지는 않았었지요. 현금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결제는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만 사용가능합니다. 현금이 없는 세상이 되버렸습니다.


혼자라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깨달았습니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요. 상해에 있는 친구들 도움으로 현지 커뮤니티를 찾아 위챗 단체방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작고 사소한 질문에도 정성껏 답해주는 친구들 덕분에 방법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건 이렇게 하면 되요. 이 어플을 쓰면 훨씬 편리해요. 그들의 조언은 낯선 땅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교포 직원을 채용할 수 있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서툴지만 솔직하게 묻고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단순한 업무 지원이었지만, 어느새 생활 전반을 공유할 수 있는 든든한 인연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중국 가흥 주재원 자리에 몇 명 남자 관리자들에게 제안했지만 모두가 거절했던 겁니다. 그럴만도 한게 업무는 모두 신규 개발해야만 하고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나 한국인으로 살기에 필요한 편의 시설(한국식당, 한국마트, 자녀 학업을 위한 학원 등)이나 한인 인프라가 전혀 없는 지역입니다. 맨땅에 부딪쳐야 하는 험지 중에 험지였던 겁니다. 처음 찌아싱에 와서는 상해를 자주가야만 했습니다. 친구들에게 변화한 중국 환경에 대해서 들어야 했고 배워야 했습니다. 시골에 살면서 겪게 될 황당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상해도 이제는 한국인들이 떠나 한인이 얼마 안됩니다.

25년 6월4일 대선 투표를 하러 상해 영사관에 갔었습니다. 해외에 근무하면서도 언제 어디서든 투표를 빠진적은 없습니다. 상해 영사관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한인 숫자가 현재 얼마나 되는지 물었습니다. 사전투표 신청자가 8천명이 안된다고 했습니다. 2018년 내가 상해를 떠날 때만 해도 상해 한인 숫자가 10만명은 된다고 했었습니다. 2025년 현재는 상해, 절강성, 강소성을 모두다 합해도 1만명이 넘는 수준인 상황이었습니다. 한국기업 철수가 이렇게 많이 됐을 거라고는 생각치 못했습니다.


주재원 생활의 일상은 단조롭지만 묘하게 무겁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다보니 외지 출장을 가지 않는 날이면 말 한마디 나눌 사람이 없습니다. 주말이 되어도 약속 하나 없는 고요한 시간이 흘러갑니다. 혼자 장을 보고, 혼자 요리하고, 혼자 밥을 먹습니다. 때로는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영상 통화를 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혼자의 시간은 제게 독서와 글쓰기 할 수 있는 성찰의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나는 왜 이곳에 와 있는가?, 이 경험은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를 되묻게 됩니다.


불편함은 불쾌하지만, 동시에 성찰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매일 같이 작은 난관들을 헤쳐나가며, 저는 문제 해결력이 훨씬 단단해졌습니다. 언어 장벽, 행정 절차, 생활 습관의 차이, 모든 것이 처음엔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단련시키는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스스로 적응하고자 애쓰다 보니, 이제는 낯선 환경에서도 빠르게 길을 찾아내는 힘이 생깁니다. 혼자만의 힘만으로는 완전할 수 없지만, 도움을 요청할 때 더 단단해집니다. 흔히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서로 기대고 연결될 때 강해집니다. 또 하나는 변화에 대한 유연성 입니다. 익숙했던 시스템이 통하지 않을 때, 고집 대신 호기심을 선택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 하는 길입니다. 왜 이렇게 바뀌었지?라는 불평 대신, 어떻게 하면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길이 열렸습니다.


혼자라는 고립은 외롭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 보는 기회가 됩니다. 사람 사이에서 부드럽게 흘러가던 일상이 사라지자, 나는 내 안의 목소리를 더욱 뚜렷이 뜯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불안했지만, 불안조차 제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신호였습니다. 주재원 생활은 업무 성과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새롭게 발견하게 해주는 기회입니다.


중국 2선 도시, 한국인이 없는 환경에서의 주재원 생활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낯선 땅에서의 하루하루는 여전히 크고 작은 도전의 연속입니다. 그럼에도 이제 이곳에서의 경험을 낯선 곳이 주는 선물이라 부르려 합니다. 불편함과 고립, 그 속에서 찾아낸 새로운 힘과 관계, 자기 성찰은 한국에서 얻을 수 없는 값진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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