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던 기억으로의 여행 feat. 타임 슬립 글쓰기
잊었던 기억으로의 여행 feat. 타임슬립 글쓰기
흔들다리를 건너며 배운 인생의 비밀
잊었던 기억으로의 여행 feat. 타임 슬립 글쓰기
잊었던 기억으로의 여행 feat. 타임슬립 글쓰기이
수업 시간 중에 책 쓰기 선생님이 나를 호명 후 질문했습니다.
Q : 산에 가 본 경험 있나요? 기억나는 것들을 단어로 말씀해 보세요.
A : 대둔산, 흔들 다리, 고바위 사다리, 놀리기, 친구, 힘들다, 땀, 수건, 모자, 오이
짧은 몇 초 동안 기억을 더듬자 타임 슬립이 된 듯했습니다.
기억은 1999년 여름, 또래 동료 14명과 함께 갔던 대둔산 여행으로 갔습니다.
"우아... 이 산 누가 산책하러 간다고 생각하라고 한 거야?!" 힘들어 죽을 거 같아.. 헥헥헥.."
아침 6시 숙소에서 대둔산 등산길에 올랐습니다.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질 체력이 바닥을 보였습니다. 산행 길은 온통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제멋대로 깔려 있었습니다. 운동화를 신었는데도 발을 바닥에 디딜 때마다 돌의 딱딱한 모서리가 발바닥을 찌르는 듯했습니다. 산 중턱 즈음부터는 비탈이 급격해져서 무릎을 허리춤까지 올려야만 계산을 오를 수 있었죠. 저는 이미 선두 그룹에서 멀어졌습니다. 후진에서 낙오되는 사람이 없도록 챙겨주는 동기 몇몇이 뒤에서 독려해 주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야!! 힘내!!"
"그 정상이라고 말한 거 한 시간도 더 된 거 같은데... 목말라 죽겠어..."라고 응수했지요.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줄기가 티셔츠 목 주변을 젖게 한지 오래였습니다.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수건을 꺼내 대각선으로 두어 번 접어서 목에 두른 뒤 목에 묶었습니다. 평생 산행이라고는 몇 번 해 본 적 없었던 저는 이내 헐떡거렸습니다. 발을 더 이상 뗄 수 없을 거 같았지요. 멀찌기에 작은 평상이 보였습니다. 저는 목적지를 평상으로 생각하고 바닥만 보면 맥없이 풀린 다리를 무릎을 끌어올려가면서 간신히 산을 탔습니다. 쉼터에 도착했습니다. 평상에 주저앉아 벌렁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있자니 시원한 바람이 얼굴과 팔을 스쳤습니다. 감았던 눈을 뜨자 새파란 하늘이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보였습니다. 진한 숲 향기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가지고 왔던 생수병에 물은 이미 다 마신 뒤였습니다. 뒤 따라오던 동료가 오이 한 개를 저와 친구에게 건넸습니다. 숙소에서 오이를 챙기는 동료를 보며 "생수병이나 챙기지 무슨 오이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평소 오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동료가 건네준 오이를 받아 들고서는 냉큼 먹지 않았습니다. 쉼터에는 평상만이 하나 덩그러니 있을 뿐, 아이스박스 노점상 하나가 없었습니다. 목이 타들어가는 듯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오이를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길쭉한 오이 머리를 입안으로 넣었습니다. 딱딱한 겉면을 윗니와 아랫니로 깨물자 한 움큼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와그작와그작 오이의 청량감을 느끼면 씹었습니다. 씹을 때마다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평소였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오이 한 개를 다 먹었습니다. 산에 쓰레기를 버릴 수 없으니 생수병을 손에 쥐고 다시 올랐습니다. 빈 생수병조차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산행하는 사람들이 왜 오이를 가지고 다니는지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10분 정도 흘렀을까요. 더 이상 지체되면 하산할 때 시간이 너무 늦을 거라고 동료가 말했습니다. 후발대를 챙기는 동료의 말에 저질체력자인 저와 친구는 몸을 일으켰습니다. 산너머 산이라는 말이 이런 거구나. 눈앞에 보이는 흔들 다리... 고소 공포증까지 있는 저에게는 시련이었습니다. 앞을 보니 이미 다리를 건넌 동료 몇이 손을 흔들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흔들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낭떠러지였습니다. 여기서 떨어지면 죽겠구나. 싶었습니다. 흔들 다리 앞에서 쉽게 발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다른 친구들이 있으니 가보기로 했습니다. 장난기 많은 동료 한 명이 흔들 다리 중간 즈음에서 발을 굴렀습니다. 흔들 다리는 위아래로 출렁거렸습니다. 메스꺼움이 올라왔습니다.
"죽을래?!!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저는 소리쳤습니다. 난간 밧줄을 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친구가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걱정 마! 안 죽어, 아래 내려다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 파란 하늘도 봐주고 별거 아냐! 흔들 다리는 원래 흔들리게 설계된 다리야"
저는 친구의 티셔츠 끝자락을 한 주먹 움켜쥐고 천천히 앞을 보며 걸어갔습니다. 흔들 다리 끝에 도착해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저 길을 어떻게 걸어왔을까.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흔들 다리를 한 개를 건너고 다시 정상을 향해서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경사가 50도라는 정상 고바위 다리 앞에 섰습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아놔... 이번에 나 정말 못해 못해... 못 간다고..."울음이 터지기 직전이었습니다. 저는 어느새 동료들과 계산 위를 오르고 있었습니다. 뒤에서 제가 올라가길 기다리는 동료들이 말했습니다. "패티 김! 패티 김 못 올라가면 우리 다 하산 못하는 거야!! 으하하하하하" 겁쟁이인 저를 놀렸습니다. 민폐녀가 되기 싫었습니다. 발을 들였으니 앞으로 가는 방법뿐이었습니다. 하늘만 보고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발한발 옮길 때마다 뒤에서 응원의 목소리들이 들려왔습니다. " 잘한다! 패티 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
고생 끝에 올라선 정상에서 맞이하는 바람은 시원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흔들 다리는 본래 흔들려야 합니다. 흔들 다리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 않아 끊겨버릴 겁니다. 흔들려야 안전합니다. 인생에도 풍파 있습니다. 인생이 고요하고 아무 일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이 주는 모든 산물에 대해서 당연히 주어지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낭떠러지지만 막상 떨어질 일 적습니다. 앞서 가는 사람의 등을 보던가 멀리 푸른 하늘을 응시하면 두려움을 떨칠 수 있습니다. 두려울 땐 앞을 보거나 위를 보며 살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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