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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술로 본 '상식의 간극' 이야기

"옳은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술로 본 '상식의 간극' 이야기-


image.png?type=w1 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술로 본 '상식의 간극' 이야기 1

2016년 3월.


회의실 안은 묘하게 조용했습니다.


최고경영자가 질문을 던져졌지만,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나요?" 아무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정적이 흘렀죠. 무거운 공기 속에서 제 이름이 불렸습니다. 마치 누군가는 답해야 하는데, 마침 저를 떠올린 듯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 최고수를 이겼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앞으로 오프라인 유통은 저물고 온라인 유통이 대세가 될겁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순간 회의실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스무 명 남짓한 관리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제게 꽂혔습니다. 누군가는 미묘하게 웃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눈치 없는 사람'으로 찍혔습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때 제가 틀린 말을 한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맞는 말을 빨리 했던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설득은 상식에서 출발한다. 상식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설득은 이루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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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간극이 만든 설득의 실패

그날 회의실에서의 '상식'은 오프라인 유통의 안정이었습니다. 모두가 오프라인 유통 세계에서 수년간 큰 성공을 경험했고, 성공 경험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쌓아왔습니다. 저는 그들의 상식 밖, '변화의 불안'이라는 낯선 영역을 불쑥 들이미는 모양새였던겁니다.

내가 말한 내용이 옳든 그르든, 그날 회의실에서의 중요한 건 논리(Logos)가 아니라 정서(Pathos)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조건을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에토스(Ethos) 말하는 사람의 신뢰. 말하는 사람의 인성,

"왠지 그사람이 말하면 그럴듯하게 들리면서 믿음이 간다니까."


파토스(Pathos) 듣는 사람의 감정. 듣는 사람의 기준,

"오늘은 부장님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단번에 결재를 받았습니다."


로고스(Logos) 말의 논리. 말에 담긴 내용의 올바름,

"그가 제시한 데이터와 의견에는 반박의 여자가 없다."



저는 세 번째, 로고스에만 집중했습니다. 설득은 '옳음'을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라, '공감'을 전제로 한 대화입니다.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진리도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image.png?type=w1 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술로 본 '상식의 간극' 이야기 3

상식에서 출발해야 설득이 된다.

그날로 돌아가 다시 대답한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알파고의 승리는 놀랍습니다. 인간의 직관이 여전히 대단하지만, 기술이 점점 사람의 판단에 가까워지고 있네요. 우리 유통도 오프라인의 강점은 지키되, 이런 변화를 조금씩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대답은 '오프라인 중심'이라는 조직의 상식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프라인 중심이라는 상식 위에 '새로운 시각'을 조심스레 얹는 방식입니다. '상식의 확장'을 제안하는 겁니다.

설득의 핵심은 상대를 나의 논리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상식 안에서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옳은 말보다 먼저 해야할 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변론의 성패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그렇습니다. 듣는 사람의 기분, 상황, 이해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말은 아무리 옳아도 닿지 않습니다. 회사의 상사는 때로 논리보다 '조직의 질서'를 중시합니다. 경영자는 객관적 데이터보다 '현재의 안정'을 택했던 겁니다. 그들에게 옳은 말보다 필요한 건 '이해받는 감정'이었습니다.




image.png?type=w1 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술로 본 '상식의 간극' 이야기 4

상식을 공유하는 대화의 힘

그날의 경험 이후, 저는 말하기 전에 한 가지를 점검합니다.


"내가 가진 상식이, 상대의 상식과 같은가?"


이러한 질문 하나가 오해를 좁힐 수 있었습니다. 회의에서도, 일상 대화에서도, 상대를 설득하는 일에 대해 두려움을 내려놓게 되어갑니다.


설득은 '이기는 말'이 아니라 '함께 가는 말'입니다. 옳은 말을 하더라도, 상대의 입장에서 옳다고 느껴질 때 비로소 통합니다.




image.png?type=w1 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술로 본 '상식의 간극' 이야기 5

이제는 압니다. 그날 제가 했던 말은 논리적으로 맞았지만, 정서적으로 시기상조였다는 것을요. 상식의 간극을 줄이는 대화. 그것이야말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진짜 변론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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