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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Jul 28. 2022

가장 자부심을 느낀 순간

가장 자부심을 느낀 순간을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글의 주제가 간단한 듯 보이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심오하며 나를 옥죄어온다. ‘최고’, ‘가장’이 붙은 주제는 스스로를 검열케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조심스레 자부심에 대한 정의를 내려 생각의 범위와 실수할 가능성을 좁힌다. 현재 내가 규정한 자부심이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이다. 이제야 조금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살면서 자부심을 느낀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학위 논문이 저널에 게재된 일? 선배와 함께 쓴 논문이 미국언론학회(AEJMC)에 게재되어 그 일로 선배가 교수가 된 일? 스펙으로 무장한 똘똘이들 사이에서 인턴 자리를 꿰찬 것? 그리고 그 인턴들 중에서 유일하게 정규직으로 뽑힌 것? 아니면 동기들 중 가장 먼저 승진한 일? 동기 중 가장 인기 많은 아이와 연애를 하게 된 것? 살짝 재수 없어지려 한다. 그렇다면 마케팅 퍼포먼스를 인정받아 투자사로부터 유상증자 받은 것? 서울시장으로부터 함께 일하자 제안 받은 일? 지방선거에서 퍼스널 브랜드 기획을 담당하며 승리에 일조한 것? 세 번이나 헤어진 연인과 결혼한 것? 아, 이건 빼자. 그렇다면 공공기관 리브랜딩 우수사례로 뽑혀 상을 받은 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까지 나열한 것은 그저 인정욕구에 목마른 애정결핍 중증 ‘찌질이’의 어설픈 잘난 체일뿐이다. 구질구질하고 찌질찌질한 저질 자랑, 딱 그 수준이다.


저 문장들을 글로 뱉어내는 순간 아뜩해진다. 이런 것들을 잘도 말하고 다닌 시절이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나의 자부심은 치부(恥部)가 되어 경부(頸部)를 압박한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이지 자랑스럽기는커녕 부끄러운 삶만 살아온 존재인건가?! 자존감이 바닥을 찍는다. 멘탈 회복을 위해 아내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잘 좀 하자”는 그의 한 마디에 바닥에 있던 자존감은 지하를 뚫고 더 아래로 내려간다. 이럴 때 최고의 명약은 바로 ‘엄마’이다. 모든 어머니들에게 자식은 존재 자체가 자랑이지 않은가? 그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논문  받았을  좋았제?"

"  받았었나?"

" 됐고, 그라믄  취직했을  자랑스럽지 않더나?"

"아마  그랬겠나? 근데 그땐 니도 알다시피 내가 힘들어서  기억이  난다."

"그럼  비서관 됐을 때는?"

" 할애비 닮아가 정신  차린다 싶었지."

  

아하, 방금 한 말은 취소다. ‘모든 어머니’는 아닐 수도 있다. 빈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아니 오히려 너무 솔직해서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성격임을 잘 알기에 더 씁쓸했다. 수화기 너머로 아들의 텁텁함을 느꼈는지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 이유를 묻는다. 힘이 빠질 대로 빠진 난 대놓고 위로를 요청한다.


"그냥 요새 하두 정신없잖아.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엄마랑 얘기  하면 풀릴까 했지."


그때 나의 어머니, 서옥주 여사의 한 마디에 40년 동안 찌글찌글했던 나의 자부심이 한 순간에 다림질 한 듯 펴진다.


"웅아, 근데 있잖아. 요즘에는 니가  한다케도  불안하지가 않더라. 옛날에 퇴사한다고  때는 걱정도 되고 안타깝기도 하고, 솔직히 실망스럽기도 하고. 그카다가  갑자기 정치 쪽으로 간다카이 우야꼬 싶더라고. 니한테 말은 안했지만  성당도 가고 갓바위도 가고 그랬데이. 그라다가 니가 최근에 회사 관두고 제주도 간다고 했을   있나~ 희한하게 이제는 걱정이  되데~ 이게 설명은   되는데...... 암튼 글타.  성당 간다. 끊는데이~"


전화를 끊고 혼자 차에서 한참을 울다 내렸다. 그날따라 날이 정말 화창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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