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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Aug 22. 2022

좌절감으로부터 벗어나는 나만의 방법

Tarrytown_Soft opening


  8월 12일, 제주에 태리타운을 오픈했다.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줄 알았다. 수산리에서 시작된 줄이 장전리까지 이어질 줄 알았다. 사람이 밀물처럼 밀려와 돈 무더기에 쓸려갈 줄 알았다. 그럴 줄로만 알았다, 알았다, I see, 아이씨... 결과는 내 자존감만 썰물처럼 쓸려 내려갔다. 조석간만의 차는 내 키보다 훨씬 크게 나를 집어삼켰고, 끝내 휩쓸고 갔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럴 줄 알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역시나 내 인생에 요행따윈 없었다. 수십 년을 살면서 그런 기적따윈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멍청하게 또 기대를 했다.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내가 한 만큼 얻어 가는 삶이었다. 한 만큼 가져간다? 그래, 그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인생이긴 했다. 가끔 노력한 것보다 덜 얻어 갈 때도 있었지만, 잃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라는 주변의 충고에 자위했다. FBI WARNING, 씨익-      


  내게는 로또 당첨 같은 그런 행운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다 알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는 문을 열고 삼 일 만에 처참하게 좌절감을 선사했다.      


  바로 매출이 급감한 것. 급감이라는 표현보다 더 나락 밑으로 떨어지는 단어를 찾아본다. 자신을 더 하찮게 짓밟아 본다.      


  매출의 초토화. 초/토/화/     


  제법 마음에 드는 단어를 찾았다. 초토화란 말 그대로 땅을 불질러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적이 그 어느 것도 활용할 수 없게 모든 것을 싹 태워 없애버리는 전쟁 용어이다. 태리타운의 매출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였다.


  지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시크릿 오픈의 매출이 나쁘지 않았기에 부픈 기대를 안고 새벽 다섯 시부터 떨린 마음으로 일어나 스콘피자를 만들었던 아내는 결국 그날 밤 폭발하고 말았다. 그의 노력은 썰물처럼 밀려갔다. 어쩌면 나보다 더 큰 기대를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가 느낀 조석간만의 차는 나보다 컸던 것 같다.      


  자연스레 모든 잘못은 나에게로 돌아온다. 제품(그가 만든 스콘피자)은 훌륭했기에 모든 탓은 마케터에게로 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마케터로서는 너무나 익숙한 경험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파도는 나를 아프게 쓸어내린다. 해결책이 없었기에 변명도 힘을 얻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아내를 위로했다. 그러나 곧 나도 폭발하고 말았다. 폭발한 나를 보고 있자니 그게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내 그릇이 그 정도였던 것이다.     


  그럼 마케터인 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가? 기본적으로 마케터는 광고비를 쓰는 사람이다. 좋은 마케터는 돈을 잘 쓰는 사람이다. 안 쓰고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예산 안에서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는 게 나의 업이다. 그러나 마통과 카드는 이미 한도가 넘었고, 잔고는 찰랑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막판에 투자금이 동결되고, 제품 제작 원가가 올라가다 보니, 마케팅 비용의 편성 자체가 불가능했다. 게다가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경사로를 설치하느라 마지막 남은 금액을 쥐어짰다.     


  기적이 없을 걸 알면서도 기대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마케터지만 마케터로서 할 수 있는 건 기도와 기대뿐이었다. 노력하고 싶지만 노력할 거리가 없을 때 지독하게 매서운 좌절감을 만나게 된다.      


  혹시 글이 제법 길어졌는데도 극복 방법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불안하지 않은가?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게 나만의 극복 방법이다. 이 절망적인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 평소보다 짧은 호흡으로 이렇게 낱낱이 읊어댄다. 말을 한다, 글을 쓴다. 혼자 삭히지 않고, 나의 독자인 당신에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당신의 대답을 기다린다. 그것이 어떻게 돌아올지는 중요치 않다. 위로든 욕설이든, 비아냥이든 뭐든 상관없다. 그냥 기다리는 시간이 내게는 치유의 시간.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좌절감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다.      


  견디다 보면 견뎌지고, 그러다 보면 늘 얻어지는 게 있는 게 나와 당신의 삶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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