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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Apr 11. 2023

미리 써 두는 유서

태리타운 멤버들에게

태리타운을 시작하고선 두려운 것이 하나 생겼다. 나의 사망으로 인한 회사 운영 상황에서 의사결정 부존재의 상태가 되는 것. 그도 그럴 것이 태리타운이라는 이름부터 건물의 페인트색, 바닥재, 타일 크기, 가구부터 조명, 볼캡 디자인과 컬러, 스웻밴드 원단의 종류, 하물며 스콘 두께까지 태리타운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제품과 공간에는 나란 사람의 가치관과 인생이 반영됐기 때문에. 2% 과장하면 태리타운은 나의 분신과 다름없기에 혹여 내가 떠난다면 남은 사람들에게 해야 하는 말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렇기에 미리 유서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곧장 써본다.


태리타운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께


태리타운은 그냥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누군가의 성장을 담보한 휴식에 보탬이 되는 것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그것과 반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만약 누군가를 해치는 것이 된다면 우리는 절대 이를 실행하면 안될 것입니다. 또, 수익은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환경을 해치는 일이라면 의사결정할 때 매우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카페 용품을 구비할 때 3배나 비싼 친환경용품들을 쓰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늘 조금 더 넓은 범위의 ‘우리’를 생각하며 의사결정을 하길 바랍니다. 이 확장된 우리에는 인간이 아닌 동물도 포함됨을 기억합시다. 그렇기에 우리가 볼캡을 제작할 때 가죽끈을 대체할 수 있는, 형태적으로는 유사하지만 동물의 가죽을 쓰지 않고 실리콘을 활용한 새로운 부자재를 제작한 것 아닐까요? 이 역시 이윤만을 탐한다면 하지 말았어야 할 의사결정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태리타운을 이루는 근간이자 나아가야 할 길일 것입니다. 혹시 제가 어느 날 떠난다고 해도 우리가 지닌 이러한 가치들은 그대로 지켜졌으면 합니다.


끝으로 아내에게 남깁니다. 사업자통장 비밀번호는 ****.


한참을 쓰다가 맨 마지막 줄을 제외하곤 모든 것을 지운다. 할 필요가 없는 말들을 데이터 아깝게 쏟아낸 것. 만약 내가 부재하게 되더라도 앞으로 펼쳐질 태리타운의 이야기는 지나간 사람이 아닌 남은 사람들의 몫이기에. 그저 내가 남길 것은 통장 비밀번호와 매일 하한가를 치고 있지만 언젠가는 떡상할 주식 정도가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굳이 뭘 써서 남길 필요도 없다. 그냥 내가, 그리고 우리가 믿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쭉 달려 가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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