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긴 생각, 짧은 글
제목: 그놈의 마케팅, 저는 가장 세속적인 일을 하는 마케터입니다
출판/발행/카테고리: 넥서스BIZ / 2019. 3. 12 / 마케팅전략
쪽수/무게/크기: 256쪽/338g/141*202*24mm
ISBN: 9791161656021
- 예스24 마케팅/세일즈 Top100 4(최고 38위)
- 네이버 베스트셀러 선정
당시 제법 선전을 했던 책. 그러나 한동안 이 책을 멀리 했다. 북토크는 당연히 모두 고사. 나의 커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챕터들 때문에 그리움과 우울감을 떨치기 위해 최대한 내 삶에서 떨어뜨려 놨었다. 그러던 와중 얼마 전 선배님 한 분이 내 얘길 들으시더니 손을 꼬옥 잡아주시며 “애쓰네”라고 한 마디 해주시는데 뭐라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제법 많은 감정들이 게워내졌다. 그것들은 미처 삼키지 못한, 아니 애초에 삼킬 수 없는 것들이었다. 게워져야 할 것들을 그대로 품고 있으니 힘이 잔뜩 들어갈 수밖에.
그렇게 조금 게워진 상태로 제주에 돌아왔다. 오자마자 짐도 풀지 않은 오랜만에 <그놈의 마케팅>을 펼친다. 혼자 키득대면서 읽는다. 고놈 잘썼네. 그러다가 애송이스러운 면도 보인다. 훔친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다 얼른 챕터를 넘긴다. 괜히 부끄러운 게지.
문득 책 쓰던 때가 떠오른다. 몇 달을 방에 틀어박혀 문장을 다지고 또 다졌다. 문장이 짓이겨지고 문드러질 때까지. 마케팅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쓸모 있게 만들기 위해. 그 탓일까? 분에 넘치게도 (극소수지만) 팬이라 자처하는 분들도 생겼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내가 일했던 회사와 브랜드에 관한 기록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라는 필터를 거친 한 사람의 인생 기록이고 증명이었다. 기다란 한 권의 이력서자 후배 마케터를 위한 OJT 자료인 셈. 결국 이 책은 내가 거쳐온 브랜드의 마케팅 전략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마케터 신영웅의 이야기였다. "그렇네, 그랬어." 염불처럼 중얼댄다. 위로라도 하는 것처럼.
서자 대하듯 버리진 못하고 눈칫밥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묶어만 뒀다. 정말이지 홍길동이 따로 없었다. 신인 작가 주제에, 듣보 마케터 주제에 3쇄까지 자기 힘으로 간 이 책을 내가 꼴도 보기 싫다는 이유로 너무 방치했다. 이제는 간헐적이지만 아직도 종종 <그놈의 마케팅> 리뷰가 올라오는 이유가 있다는 걸 간과했다, 무시했다, 방치했다, 그리고 미워했다.
내 마음이 조금 게워져서 이 책이 편해진 걸까, 아니면 이 책의 의미를 깨달아서 마음이 조금 게워진 것일까? 뭐가 먼저인지 뭐가 맞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책을 뒤로 숨기거나, 오스틴이라는 세례명 속에 신영웅이 숨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리고 다시 집필을 시작했다. 계약은 벌써 했지만 책을 쓸 때마다 상실의 기억 때문에 도망다녔던 시간을 반성한다. 출판사에도 죄송한 일이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하다.
물론 여전히 글을 쓰는 건 괴로운 일이다. 마케팅 관련한 글을 쓰기만 해도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괴로운 기억은 없어지지 않았다.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 없던 일이 안 되는 것처럼. 그냥 이 괴로움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나뿐만 아니라 동료들 모두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괴로움을 껴안은 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글로 풀어야 한다. 괴롭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있는 기분을 들게 해주는 일이다. 살풀이하듯 새로운 이야기를, 글을, 책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그놈의 마케팅>가 주니어 마케터를 위한 책이었다면, 이번에는 스몰 브랜드를 위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데이터가 아니면 말을 잇지 않는 공동 저자와 함께. 그나저나 제목은 또 뭐라고 짓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