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지혜로운 조언이나 실용적인 도움을 전해주는 선배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 멘토(Mentor)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인물 ‘멘토르’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는 오디세우스의 친구로서 아들인 텔레마코스의 교육과 집안일을 맡길 정도로 신뢰하는 사이였다. 이후 멘토르는 오디세우스의 부재 상황에서 텔레마코스의 지지자로서 그를 격려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에 대한 구체적인 도움을 준다. (물론 더 정확히는 멘토르로 변신한 여신 아테나였지만.) 그리고 이는 1699년에 쓰인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페네롱의 <텔레마코스의 모험>에서 인용되며 멘토란 단어는 신뢰를 바탕으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당대 유행어가 되었고, 이 작품이 18세기까지 사랑을 받으며 대중 언어로 자리를 잡게 됐다.
결국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뉘앙스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단어는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도움을 주는 사람이긴 한데, 대신 나서서 해결해주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실마리를 던져주는 사람에 가깝다. 이런 맥락에서라면 내게도 잊히지 않는 멘토가 한 분 떠오른다. 현재 네이버의 대외/ESG 정책을 맡고 있는 채선주 대표. 회식 때마다 “영웅아, 넌 내가 안 무섭니? 내가 니 이모쯤으로 보이지?”라는 말로 핀잔을 주면서도 알게 모르게 뒤에서 챙겨줬던 분, 그러나 무엇보다 내게 일하는 자세와 태도에 대한 기본기를 다져준 분이기도 하다.
10년 전 입사 동기 중 가장 먼저 대리로 승진을 했다는,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자만에 취해 매일 붕붕 구름을 타고 다니던 즈음에 생긴 일이다. 당시 그는 홍보실 이사로 우리 부서의 수장이었고, 그의 일하는 방식은 피라미드가 아닌 방사형으로, 막내인 내게도 예외 없이 다이렉트로 업무를 꽂았다. 이번에는 중국 IT 기업 현황에 대한 리서치 업무였고 그는 늘 그렇듯이 ASAP을 마침표 대신 붙였다. (자지 말란 얘기다.)
이틀 정도 밤을 새서 자료를 실장님 방으로 가져갔다. 당당하지만 최대한 불쌍한 표정이 필요한 아이러니의 순간! 그러나 표정을 채 짓기도 전에, 한 장도 채 보지 못할 정도로 짧은 시간만 흘렀는데 그의 입에서 “다시!”가 터져 나왔다. 그저 얼음. 상체가 얼어서 서류를 들고 뒤로 돌아서지도 못한 채 마이클 잭슨에 빙의라도 한 마냥 총총거리며 방을 빠져나왔다. “뭐가 문젠지 말씀이라도 해주시죠?”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냥 나는 그저 스물 아홉 살 한국의 뽀얗고 통통한 잭슨이었다. 그 날 이후로 매일 같이 자료를 조금씩 수정해서 갔고 그때마다 번번히 내 귀에는 “다시”만 들려왔다. ‘대리 됐다고 드잡이 하시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기를 일곱 번 정도 했나? 시간은 열흘 정도 지났고, 나는 홀쭉한 잭슨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23쪽에 무슨 내용이 있을지 떠올릴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사형 의자에 앉은 죄수 마냥 의자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 오탈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확인하고 장표 만들어 놔. 의장님 보고할 거니까.”
!!!!!!!!!!!!
드디어 통과. 그렇게 홀쭉해진 마이클은 그 방을 유유히 빠져나오면 모든 것이 해피엔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아님 진짜 이사님이 이모로 보였는지 나도 모르게, “이사님, 처음부터 뭐가 틀렸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훨씬 빨리 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입이 뱉어냈다. 내가 아니라 입이 뱉은 거였다. 그러나 더 놀란 것은 그의 대답이었다. 혼날 줄 알았는데 그저 웃으며 한 마디를 보태셨다. “너 이거 초안부터 다 따로 저장해놨지? 가서 역순으로 비교해서 한 번 봐. 시간 없으니까 빨리 나가고 남과장 좀 들어오라고 해.”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왔지만 혼나지 않고 빠져나왔다는 데에 안도하며 자리로 돌아와 시킨 대로 파일을 열어서 역순으로 본다, 마치 VHS를 리와인드 하듯이. V7에서 V6, V5… 뒤로 갈수록 자료는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이 자료를 보고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그렇게 공감이라는 진짜 진짜 해피엔딩이 채 끝나기도 전해 갑자기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처럼 반전 하나가 꼬리뼈를 타고 뒷덜미를 기습했다. 거기에는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란 것보다 더 소름 돋는 반전이 있었다.
자료를 8번이나 수정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내게 조언을 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저 “다시”란 말만 듣고 계속 자료를 만들어왔다. 그 누구도 어떻게 고치라는 조언을 해주지 않았다. 나란 인간은 처음부터 V8처럼 자료를 만들 수 있었던 것. V2부터 V7는 나의 나태함이, 나의 안일함이 만들어낸 사생아였고, 내가 그들을 세상에 인정받을 수 없는 존재로 만든 꼴. 결국 그의 2음절 단어, ‘다시’는 그 어떤 조언보다 뼈에, 아니 모세혈관에 새겨졌고, 이것은 지금까지도 내가 일을 할 때 가지는 기본적인 태도이자 방법론이 되어 있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다시"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