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 아닌 신영웅
Scene #1 2012년 가을
요양병원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는 게 환자를 위한 길이라며 의사는 의외로 해맑게 아내와 아들에게 말했다. 그 웃음에 누구 하나 상처 받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아내와 아들은 서로에게 들키지 않았지만 안도했다. 아니 적어도 아들은 그랬 다. 들어갈 때마다 몸과 마음이 미로처럼 꼬이는 그곳으로부터 도망치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그들의 요양병원행은 환자에게는 죽으러, 가족에게는 살러 가는 곳이 되었다.
Scene #2 2013년 초여름
논문 학기였다. 월화수목은 신촌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논문만 썼다. 참고문헌을 하나라도 빼먹을 까봐 고물 프린터기는 밤새 쉬지 않고 돌았다. 쉬는 시간은 ‘용지 걸림’으로 A4지를 갈 때가 유일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대구행 KTX를 타고 무궁화호를 타고 싶었을 것이다. 요양병원으로 가서 용지 대신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았다. 당신을 위한 게 아닌, 어머니를 위한 일이라 자위했다.
Scene #3 2013년 한여름
처음으로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겼지만, 어머니는 백수 아들이 상주인 장례식은 견디기 힘들었는지 처음으로 울부짖듯 화를 냈다. 제발 취직하라고. 그 울부짖음은 자신보다 어머니 본인에게 내는 화인 걸 더 잘 아는 아들이기에 그냥 바로 원서를 썼다. 그나마 아들이 가고 싶은 회사들은 가을이 되어야 채용 공고를 띄우는 곳이었다. 두 달만 빨리 띄워주지. 시험 볼 기회라도 얻게. 하지만 아들은 그저 여름방학부터 취업할 수 있는 곳으로 갔다. 가을까지는 너무 멀었고 아버지는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기에. 진짜 무슨 B급 영화도 아니고 하필 그 날은 비가 많이 왔다. 서울에만 비가 왔 다. 대구는 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은 구역삼세무소 사거리에서 역삼역 사이를 비를 맞으며 오르내렸다. 그 짧은 오르 막길에서 실컷 울고 난 뒤 파파존스에서 피자 한 판을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원래 도미노 피자를 먹는다.
Scene #4 2014년 가을, 추석 이틀 전.
결국 아버지는 추석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장례식장에는 NAVER라고 찍힌 일회용품들이 깔리고 ‘대표 김상헌’ 이라고 써진 대형 화환이 왔다. 같은 팀 선배들, 하물며 홍보이사마저 대구까지 내려왔다. 홍보실 사단의 등장에 조문 객들은 이 집 아들 잘 키웠다고 난리다. 화환 앞에서 사진 찍기 바쁘다. 그 말들이 철퇴처럼 오른쪽 어깨를 내리 찍는다. 그가 선택한 건 전혀 없는 이 상황을 사람들은 마치 해피엔딩처럼 이야기 하고 있었다. 사실 아들은 공부를 더 하고 싶었 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죽는 게 싫었다. 그가 원한 건 그 어느 것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대체 어디가 해피엔딩이었던 것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