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긴 생각, 짧은 글
아버지에 대한 나의 디폴트 값은 증오, 분노, 질투 같은 단어들로 세팅되어 있다. 손꼽만큼의 추억은 있지만 애증으로 부르기엔 ‘애’가 밍밍한 카스 라이트의 알코올 도수 수준이다. 그런 이유로 그가 남긴 것은 대부분 긍정보다 부정에 가깝다. 나열하자면 브리태니커 사전이나 팔만대장경 정도의 분량이겠지만, 시간 관계상 그 많고 많은 것 중 ‘질투’ 파트를 끄집어 내본다.
Chapter 19912001_JLS
늘 해보고 싶은 게 많았던 내가 어머니에게 “검도가 배우고 싶어요”나 “미대를 가고 싶어요”라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전부 “니 아부지 편찮으신데, 그냥 조용히 공부해서 대학, 아니 멀리 가라” 정도였다. 그렇게 결핍과 갈증으로 곪은 유년 시절을 보낸 나와 달리, 나의 아버지는 ‘부자 아빠’ 덕분에 평생을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모두 가난했던 1950년대에 엘리트스포츠를 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국민학교 3학년부터 야구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일반인은 여권 발급도 어렵던 시절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해외도 다녔다고 했다. 그는 굳은살 박힌 손을 내밀며 죽도도, 붓도 들지 못했던 내게 자랑하듯이 말했다. 틈만 나면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했다. 마치 빌 머레이가 열연한 <사랑의 블랙홀> 마냥 끊임없이 반복됐다. 술이 들어가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얘기했다.
내가 더 화나는 포인트는 따로 있다. 그는 대학교 4학년 때 그 좋아하던 야구를 관뒀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개입했던 그의 삶에서 그는 야구선수가 아닌 가산을 탕진한 사업가이자 알콜중독자였다. 그의 사후에 들은 얘기지만 그는 상대팀 감독 폭행으로 제명을 당했단다. 참으로 무책임하고 철없고 한심하고 나약한 인생이여. 누군가에게는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는데 말이다. 타인이 보면 한 편의 영화 같은 삶이겠지만 그 삶에 연루된 내겐 늪이자 나락이었다. (end of chapter)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요즘 볼캡, 그러니까 야구모자를 만든다.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아비와의 인연처럼 나와 야구는 보테가베네타의 인트레치아토 기법*처럼 엮여 있다. 아니, 벗어나려면 벗어날 수 있었겠지만 내가 택한 방식은 묻어두기가 아닌 상처를 더 깊게 찌르기였다. 온전히 나를 위해서, 이제는 이 유치한 감정과 스스로를 괴롭히는 기억으로부터 회피가 아닌 극복을 하고 싶어서. 야구모자는, 태리타운은 내겐 그렇게 살풀이가 되어 간다.
*인트레치아토 기법: 띠처럼 재단한 가죽을 한 가닥씩 엮어내어 격자로 꼬아올리는 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