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긴 생각 짧은 글
지난 1년동안 제대로 쉰 날이 며칠이나 될까? 게다가 아내랑 산책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상 일만 붙잡고 살았다보니 몸이 신호를 보낸다. 너 이제 20대 아니라고. 더 하면 널 폭파시켜 버릴 거라고.
목과 어깨, 허리는 이미 나가 있으니 이들은 고통 터줏대감이라 친하해도, 최근 소화도 힘들고 어지럼증이 계속 되더라. 그래서 디톡스가 필요하다 싶어서 단식을 일주일 정도 했다. 내 몸 속에 찌꺼기들을 죄다 비워내고 싶어서.
(많이 먹는 거와는 별개로) 기본적으로 식탐이 없다보니 먹는 걸 참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배고프면 물이랑 레몬주스를 먹고 산책하고. 오히려 식사 시간이 없어졌으니 하루가 길어서 일하는데 효율적이라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좋았다.
이렇게하면 한달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젠장. 서울에 오면서 모든 게 틀어졌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보이는 식당들에서 불안함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신촌에 오자마자 숙소 앞 카페의 도너츠부터 고깃집의 단백질 타는 냄새, 리어카의 보글거리는 떡볶이들, 뭣보다 선명한 붉은 간판의 노란 M이 나를 유혹한다.
‘오, 베토디...’
내 뇌에서 지워졌던 그 단어가 불쑥 롱텀메모리에서 끌어올려진다. 셰익스피어도 이렇게 간절하게 대사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없던 욕망들이 마구 쏟아진다.
제주에 있을 때는 전혀 드러나지 않던 식욕들이 서울에서는 가는 걸음걸음마다 꿈틀댄다. 태리타운에 있을 때는 어차피 나가봤자 보이는 건 논과 밭, 그리고 저 멀리 산과 바다가 끝이다보니 회사가 잘 됐음 좋겠다 하는 욕망 말고는 뭔가 꿈꿔본 적이 없던 것 같은데, 이놈의 도시가 만들어내는 욕망은 시각적인 정보에서 시작되서 후각으로 사람을 혼란케 한다. 게다가 사고 싶은 건 또 왜 이렇게 많이 보이는지. 상점마다 다 들어갈 기세. 떠올렸다. 나의 원래 자아를. 헤비쇼퍼였던 나의 또다른 자아가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는 우선 배가 고프다고 소리친다.
욕망이란 건 애초에 경험하지 않으면 갖고 싶어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사그라드는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다시 그 정보들에 노출됐을 때는 그간의 공백으로 인해 몇 배는 더 강렬하게 원하게 되는 것 같다.
결국 어제밤 나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삼각김밥과 코카콜라를 하나 샀다. 차마 떡볶이도 베토디도 먹을 수 없었기에 의자에 앉은 자아를 달래기 위해 참마를 건넨다.
에이, 얼른 돌아가자. 얘를 의자에서 물려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