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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Nov 12. 2023

섹스도 하기 전에 이름부터 지어놓은 이유

보통의 부모는 자식의 미래에다 자신의 기대를 가득 담아 주문 외듯 이름을 짓는다. 특히 자신의 삶을 반성하듯 투영한다. 내 이름이 영웅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칫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이름이라고 다를까? 지혜, 은영, 민정, 성훈, 상우 등 자주 보이는 이름마저 한자를 풀어보면 우주의 기운이 가득 담겨 있다. 지혜롭고, 바르며, 따뜻하고 정이 많고... DNA만 물려주지 않고 자신의 의지까지 X, Y 염색체에 태워 보낸다. 그 의지는 대부분 그들 인생에서 스스로에게 부족했던, 아쉬웠던, 그리고 서툴렀던 것을 반성하듯 작명한다. 자식의 이름은 부모 인생의 여집합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자식을 키워가면서 아차 한다고. 여집합처럼 살기 바랬건만 애초에 이들은 공집합 관계였던 것. 철저하게 분리된 개체임을 깨달아 간다고 말하며 서글퍼한다. 그 얘길 듣는 순간 내가 지어둔 이름이 찌릿거리며 왼쪽 눈썹을 찡긋거리게 한다. ‘아뿔사! 내가 뭔 짓을 한 거지?’

나우, 신나우. 아내를 만나기 전에, 아니 섹스란 걸 아예 해보기도 전에, 그러니까 임신의 가능성이란 게 0%일 때부터 지어둔 이름이다. (그러니 엄마가 될 사의 동의 따윈 없는 이름이기에 실현 가능성은 50%일 것이다.) 


왜 이렇게 지었을까? 사소한 것부터 나열해보자. 바로 연상되는 것은 now일 것이다. 나처럼 내일에 있을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않았으면 하기에, 현재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슬하게 걸려 있다. 그리고 성별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하고, 외국인들에게 우스꽝스럽게 이름을 불리지 않았으면 했다. 영웡, 양옹, 용융 등등, 등드르등등등! 이따위로 불리는 어려운 발음이 아닐 것. 스스로를 돌아보니 나조차 자식의 삶을 철저하게 여집합적 사고로 여기고 있었다. 

그래도 이 이름을 20년 가까이 고집한 것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원래 ‘나우’는 순우리말로 ‘조금 많이’ 또는 ‘정도가 조금 낫게’란 의미를 가진 부사, 다시 말해 부족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다다익선보다 과유불급에 부등호가 더 기우는 개인적 취향을 반영해 나의 자녀가 부족하게 사는 것은 싫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가진 것에 취해서 사는 것은 원치 않는다. 겸손이 따르지 않는 소유는 폭력이 되기 쉽기에. 이것은 여집합도 공집합도 아닌 어쩌면 내 삶과의 교집합적 요소이며, 동시에 나에게 영웅이란 이름을 부여해놓고 매번 평범하게 살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내 부모에 대한 감사이자 반항을 한 바구니에 담은 아이러니한 작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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