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팝업 이틀 째. 주말이라 기대를 한껏 했는데 이런- 사람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은 많은데 우리 부스까지 들어오지 않는다. 오전 내내 개시도 못했다. 제법 익숙해졌다 했는데 그래도 유쾌하진 않다. 묵묵히 할 일을 한다. 스누트 오픈을 앞두고 해야할 일들을 한다. 태리타운 팝업에서 스누트 오픈 준비를. 이런 효율적인 비참함이여! 오호통재라.
태리타운이란 이름을 내걸고 나온 이후 가장 처참한 날로 기록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뭐가 잘못된 거지...?’
디스플레이 탓도 해보고, 위치 탓도 해본다. 이런 저런 이유를 찾다 피곤에 찌든 볼캡 중년이 손거울에 비친다.
‘내가 문젠가?’!‘
DNA를 원망해본다. 그럴수록 나만 다친다. 원인 분석이란 이름으로 내 브랜드를 난도질한다. 셀프 물어뜯기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오늘의 매출을 어떻게든 견인하는 게 아니라 잊고 하루를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다. 무력감에서 탈피하려고 광고를 만든다. 마케터에게 가장 좋은 현실도피는 소재 제작이니까. 모델컷을 이리 크롭하고 저리 붙이고 괜히 이미지에 화풀이한다. 도피를 못하고 있던 것. 패배감이 버릇이 되면 안된다는 강박도 따라온다. 10시간째 2평도 안되는 공간에 갖혀 있으니 속도 같이 좁아진다.
20분동안 뭐하지 라고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며느리와 시어머니로 보이는 분들이 온다. “어머니 좋은 생각이 났어요! 저 그냥 이걸로 할게요.” 며느리 생일인가 보다. 시어머니는 더 좋은 걸 고르라고 한다. (태리타운 좋거든요?!)
그 사이에 시누이로 보이는 여성도 합류. 며느리는 너무 찾던 컬러라며 소길별하 콜라보 볼캡을 고른다. 생일이라는 얘기에 기분 좋게 소비하실 수 있게 그녀의 탁월한 선택에 대한 칭찬과 함께 태리타운 브랜드 소개에 영혼을 실어본다. 시어머니는 그때부터 모자를 열심히 보기 시작, 갑자기 손녀 모자도 사겠다고 하신다. 그러더니 대뜸 자신의 아들, 며느리의 남편, 고른 모자를 쓸 아이의 아빠 모자도 고르신다. 그런데 잘 들어보니 결국 그 모자도 며느리 취향으로 고르신다. 아들 핑계로 며느리에게 두 개를 건네시는 것.
뭔가 아슬아슬하면서도 따뜻한 장면이 펼쳐진다. 강철로된 무지개에 모자가 걸린 게 이런 것 아닐까? 뭔가 나도 동참해야 할 것 같아서 판매하고 있던 손수건을 내민다. “생일 축하드려요!”
잠깐이지만 모두가 행복해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감을 하려는데 한 남자가 쭈빗거리며 오더니 “모자 큰 거 없을까요?”한다.
“태리타운 볼캡은 한국인의 두상에 맞게 둘레를 제작해서 63 정도까진 편안하게 쓰실 수 있습니다.” 라고 했더니 몇 개를 쓰시다가 종류별로 툭툭 집어간다. 이런 일 잘 없다며 있을 때 사야 한다고. 불과 30분만에 9시간동안 하지 못했던 매출을 넘어 버린다. 마음 한 구석에 얹힌 것 같은 돌이 쑥 내려간다. 매출을 올렸다는 안도보다 더 큰 뭔가가 쓱 지나간다.
순간적인 감정에 살지 말고
큰 흐름에 나를 찾아라.
아, 이게 그말이었구나. 어쩌면 내일은 오늘처럼 마지막에 매출이 안 나오고 그냥 폭삭 망할 수도 있다. 늘 잘 되진 않을 것이다. 실패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패배주의도 피해야하지만 잘 될 것이란 막연한 기대도 경계해야 한다.
대신 조금 더 넓은 시선으로 자신을 객관화하는 게 중요하다. 기대도 실망도 아닌 자신의 현재를 파악하는 것. 비를 피하기 위해 달리지도, 그렇다고 그칠 때까지 멈춰있는 것도 아니라 그냥 비가 오면 오는대로 묵묵히 갈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일희일비는 죄가 없다. 일희백비를 하더라도 그 한 번의 소소한 희를 위해 우리는 빗길을 걸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