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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Dec 17. 2023

정말 어느 하나 맞는 게 없는 사람과 결혼한 이유

​2015년 크리스마스와 가까운 주말이었다. 이제 겨우 세 번째 만남이라 ‘썸’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도 영글지 못한 사이였다. 그러나 상대는 예수 탄생의 환희에 취한 것인지 내게 대뜸 물어본다.

“연봉이 어떻게 되세요? 대기업은 많이 받는다고 하던데 진짜 많이 받아요?”

“네? 아, 세전 X천 오백이고, 인센이 X천 정도예요. 이건 조금씩 다른데 큰 차이는 없고요.”

상상도 못한 질문에 뇌보다 혀가 먼저 반응해 버렸다. 나는 마치 은행 창구에서 대출 상담을 받는 것처럼 뱉어냈다.

“아, 생각보다 얼마 안 되네요?”

‘이 여자 뭐지...?’​


이것이 나와 아내의 첫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이다. 성탄 시즌만 돌아오면 파티 자리에서 난 이 레퍼토리를 토시 하나 안 틀리고 읊어 대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지겹다며 내 입을 틀어막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역시나 한 치 한 푼의 오차도 없이 묻는다, 아내에게 대체 왜 그랬냐고. 그럼 그는 정말 지겹단 표정으로, “직장인을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정말로 궁금했다”고 대답한다.

내가 아내랑 결혼한 것도 아내의 이런(?) 부분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아내는 상대의 눈치를 잘 보지 않는다. 그저 자기가 궁금한 걸 질문하고, 하고 싶은 건 늘 하고, 하기 싫은 건 또 절대 하지 않는다. 늘 행복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며 발밑이 무너져 내리는 삶을 살던 당시의 내게는 그런 삶의 자세가 너무 부러웠기에 이 사람과 살면 나도 닮아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그렇게 아내와 함께 한 지 10년쯤 지나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누군가가 늘 행복하고 건강하려면 그와 가장 가까운 다른 누군가는 옆에서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들’을 대신 해줘야 한다는 것을. 장모님, 처형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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