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영웅 Nov 28. 2023

언젠가 꼭 살고 싶은 집

​평수는 그리 넓지 않아도 된다. 스튜디오 형식이라도 상관없다. 전망 좋은 집보단 1층이 좋다. 정확히 말하면 단층이면 한다. 내 아래나 위에 이웃이 없어야 하기에. 층간소음 같은 세속적인 이슈로 골머리를 앓고 싶지 않다. 그저 킹 사이즈의 템퍼 에어 브리즈(Tempur air breeze) 매트리스만 놓을 수 있는 공간이면 된다. 두께도 33T는 필요없다, 30T면 차고 넘친다. 7시간만 자도 허리통증을 호소하는 나에게 퇴적층처럼 겹겹이 쌓아올린 고급 소재의 매트리스는 사치다. 어차피 그 위에서는 하루의 20%도 안 되는 시간을 보내기에 이 정도면 더할 나위 없다. 프레임은 최대한 보이지 않는 것으로 할 거라 무엇을 고르던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무거워야 한다. 밀리면 안 되니까.

더 중요한 건 침대의 맞은 편에는 32인치 정도 되는 적당한 크기의 커브드 모니터 하나만 플레이스테이션이 물린 채 나무 책상 하나에 올려져 있으면 된다. 나무 책상도 굳이 원목이거나 디자이너의 작품일 필요도 없다. 단지 삐걱대거나 흔들거리지 않고 땅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미동없이 잘 버텨주기만 하면 된다. 침대의 프레임처럼 그냥 무거운 책상이면 끝. 대신 의자는 원래 쓰던 걸 가져가겠다. 임스 소프트 패드 체어 중에 세 칸이 아닌 두 칸짜리 패드로 된 것. 목을 기댈 수 있으면 효율이 떨어진다. 침대와 달리 나의 일터이자 전쟁터인 책상 위에서는 늘 긴장 상태여야 하기에. 당연히 바퀴는 없어야 한다. 아무튼 다른 건 다 새로운 것이었으면 하지만 의자는 길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이것만은 챙겨가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다. ‘101호 102호’ 구조였음 한다. 나의 공간에서 아내의 공간으로 갈 때는 신발을 신고 현관을 열고, 앞집의 비번을 누르고 신발을 벗고 그녀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구조 말이다. ​아마 이 때도 나는 아내와 살고 있을 것이기에 이게 가장 서로를 위한 방식일 것이다. 생활 리듬과 삶의 방식이 극렬하게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기에 이만큼 좋은 구조도 없을 것이다. 각 방이 아니라 각자의 집, 그러나 너무 멀어도 안 된다. 현관문 2장을 사이에 두고 '함께' 살고 싶다. 그 현관문의 거리는 2미터 이내여야 한다. 가까워야 한다. 우리의 관계처럼. 그러나 가까운 만큼 두꺼운 철문 2장이 필요하다. 서로를 또 지켜야 하니까. 이것이 우리 부부에게 딱 좋은 거리이자 관계. 혹자는 한 집에서 각방을 쓰면 되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그것은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같은 공간을 쓰는 것이다. 구분과 분리는 다른 뉘앙스를 가진다.

언젠가 꼭 살고 싶은 집은 구분과 분리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실행되어 있는 집이 되었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제 파악과 모자의 함수 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