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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Aug 23. 2017

사랑하는 꼰대들에게 바침

박원순을 팝니다 #3

앞에서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참으로 꼰대스러운 얘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꼰대들에게 해야되는 얘기를 담았다. 특히 정치판의 으.르.신.들에게 그동안 해오신 노력과 헌신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바탕에 깔되 명확하게 해야될 이야기를 사랑과 애정을 담아 해보려 한다. 어찌됐든 으.르.신.들은 현재 대한민국을 만들어왔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들이다. 


그리고 이 얘기는 정치가 아닌 다른 영역의 꼰대들에게도 통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기성세대도 아닌, 그렇다고 신세대에도 끼지 못하는 애매한 세대가 되어버린 지금, 곧 꼰대가 될 수 밖에 없기에 그전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유서 정도로 이해하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세상 모든,
꼰대들에게 바칩니다



(자, 다시 본론으로 가서 나는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앞에서 말했던 러브마크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두 가지 중 하나인 기업이나 제품, 사람을 '굳이 선택할 이유'를 발굴했다고 가정하자. 그 어려운 걸 해냈으니 이제 그걸 가지고 연설도 하고~ 기자회견도 하고~ 보도자료도 뿌리고~ 인터뷰 몇 번 하면 끝? 


이렇게만 하면 저절로 세상이 알아서 찾아봐주고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고 따라와준다? 흡족한 메시지(='굳이 선택할 이유')가 있으니 게임은 이미 끝? 특히 정치영역은 사회를 바꾸는 고매하고 고차원적인 일이니 명분을 내세워 권력을 획득하고 근엄하게 리더십을 발휘하며 묵묵히 나아가면 당연히 알아봐줄거다?


당연한 얘기가 모두에게 당연한 것은 아니란 걸 깨닫는 요즘이다...


200% 양보해서 20세기에는 그렇게 해도 됐을지 모르겠다. 사실 21세기가 되어서야 대학생이 된 터라 20세기도 확실하진 않다. 그러나 지금은 대중들의 시민의식은 물론이거니와 설득 상황에서 이에 대처하는 설득지식(수용자가 마케터의 동기와 전략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판단하는 지식, *설득지식모델 참고)이 성장했고, 그 이상으로 다양한 형태의 매체도 만들어졌고, 그들은 이미 시장에 안착했다. ATL과 BTL의 경계를 구분하는 의미가 퇴색됐다.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쉽게 말해서 정치 환경이 당신이 차마 깨닫지 못할 정도로 많이 변했단 얘기다. 시민들 역시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성숙했고. 여기서 포인트는 변했다는 것이 아니라 '차마 깨닫지 못할 정도로 많이'다. 물론 본질과 핵심은 언제나 중요하고 이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환경이 변했으면 그것을 바뀐 풍토에 맞게 잘 녹여줘야 한다. 당신은 얼마나 이 변화에 녹아들고 있나? 혹시 '내가 해봐서 아는데'식의 화법으로 일관하며 변화를 감지 못하거나 아님 대충 알거나 둘 중 하나일 수 있다. 평소 저 말을 본인이 쓰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구제불능 꼰대 대열에 합류했을 수도 있다. (난 요즘 저 말이 내 입에서 나올 때마다 손바닥으로 내 주둥아리를 스매싱!)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쓴다면
당신은 이미 꼰대


사실 모르는 것보다 대충 아는게 더 독일 때도 있다. 재미있는 기사 하나를 보자. [중앙] 5.9 대선 선거전 디지털서 갈렸다 기사 내용을 요약하면 디지털 영역에서 비용 지출이 늘었고, 이 지출한 금액의 순위대로 결과가 나왔다는 내용으로, 현재 정치 또는 마케팅 캠페인의 풍토 변화를 잘 보여준다. 사실 기사는 많이 아쉽다. 아직까지 뉴미디어와 디지털에 대한 인식 수준이 '무엇인가의 서브' 영역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데이터가 풀리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 관해선 나중에 또 이야기하도록 하자. 어쨌든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게 아니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특집 시리즈에 나온 데이터를 보면 결국 온/오프라인을 떠나 '매체를 통한 광고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체를 활용하지 않은 직접 홍보비의 증가보다 현저하게 높은 수준이다. 말하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로 네이버나 카카오, 페이스북, 유튜브 등 이러한 매체들은 이제 엄연히 콘텐츠를 노출시키기 위해 광고비를 지불해야 하는 매체로 안착했다. 이미 다 돈이란 얘기다. 친절과 민망을 바꾸는 중... 여담으로 이제 우리는 뉴미디어에게서 NEW를 좀 빼줘도 충분해 보인다.


결국 올드미디어든 뉴미디어든 우리가 하루 중에 보게 것은 가족이나 동료, 또는 낯선 사람 아니면 죄다 광고물이라고 보면 된다. 매체를 돈주고 사서 사람들 눈에 잘 띄기 위해서 배치하는데 모든 마케터는 열을 올린다. 빈틈이 그렇게 많아보이진 않는다. 이처럼 우리는 이미 콘텐츠 홍수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쩌다 올린 것이 시쳇말로 빵 터지는 경우는 김정은이 탈핵을 선언하고 평화통일을 위해 우리 정부와 적극적인 대화의 장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정도의 확률이다.


우리가 보게 되는 것 중에서
가족이나 동료, 또는 낯선 사람을 빼면
죄다 광고물이라고 보면 된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콘텐츠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이에 따라 광고비가 증가했다는, 이런 상식적인 이야기를 왜 구구절절하게 했느냐? 지금 같은 방식과 화법으로는 안 먹힌다는 얘길하고 싶어 이리 돌아돌아돌아, 또 돌아왔다.


광고가 뭔가? 그게 무엇이 됐든 상대에게 프로덕트를 알리기 위해 친절한 방식을 활용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아닌가. 이제 그만 돌려대고 핵심을 말하자면, 이제 필요한 것은 What to say에 대한 고민만큼 How to say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화자의 언어가 아닌 청자의 언어로 풀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보다 친절해지자.


매체와 광고의 증가, 콘텐츠 홍수 현상은
결국 더 친절한 화법이 필요하다는 반증


다시 말해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말은 쉬운데, 그런데 이게 참 쉽지 않다. 특히 (좌우를 떠나서 일반적으로) 정치판에서는 더 그렇더라. 그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주구장창한다. 우리는 이를 신념과 가치로 포장한다. 많은 정치인과 정책가들을 보면 명분이 어떠하니, 메시지가 어떠하니, 마지막에는 시대정신까지 꺼내서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늘어 놓는데 그 속에는 묘하게 선민의식이 깔려 있다.



선민의식... 단어 자체에 거부감이 들지만 사실 이게 항상 나쁜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이를 토대로 책임감과 사명감 등을 낳기에 사회를 이끌어가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진.짜. 솔직히 말해서 현실적으로 선민의식을 가진 이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 이는 왜곡된 방향으로 증폭되어 우월감, 특권의식, 차별의식으로 변질되는 것을 왕왕 보게 된다. 심할 때는 대중과 자신들을 분리하기도 하고, 어떤 사건의 판단기준이 필요할 때 다른 잣대를 적용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노룩패스 같은 것들이 나오기도 하는거고.


친절하지 않은 화법의 원인은
기저에 깔린 선민의식 때문?


어쨌든 제 아무리 고매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손 쳐도 그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고 와닿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원탁에 앉아 What to say에만 몰두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딱히 틀린 말은 없다. 그러나 결국 말만 있다. 현상황에 대한 분석만 있다. 그래서 뭐? So What? 구체적인 방법론과 이를 입증할만한 데이터는 있는가? 그리고 이를 실현할 능력과 자원은 충분한가? 그리고 실제로 이를 행할 능력이 있는가? 그런 면에서 발로 뛰는 것도 서슴없이 해내는 우리 사장이 고맙고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말만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to be continued)




<나의 욕망 리스트>
-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기
-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브랜드를 만들기
- 비정규직을 굳이 없애지 않기(뭬야?)
-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질 수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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