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모임을 만들면서
트레바리에서 북클럽 오픈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앞두고만 있습니다. 자기소개를 쓰는 칸을 2주째 붙잡고 있기 때문에 말이죠.
퍼스널 브랜딩하는 게 업인 놈이 자기소개 하나 제대로 못해서 헤매다니,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들지만 제 머리를 못 깎는 걸 보니 제대로 된 중이 아닌가 위로도 해봅니다.
그래도 더 미룰 수 없어서 오늘은 제출을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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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참으로 거만했던, 그러나 1년만에 10억을 소진하고 현재는 차곡차곡 대출이자 갚느라 한결 겸손해진 볼캡 전문 브랜드 <태리타운>의 대표 신영웅입니다.
마흔이 되기 전까지 평생 브랜드를 만들고 팔던 마케터였습니다. 지난 15년 간 네이버와 서울시청 등 각 분야의 선두 기업에서 일하며 사랑 받는 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해왔습니다. 제가 잘 나서 성과가 난다고 믿고 살았고, 그 와중에 출간한 마케팅 에세이 <그놈의 마케팅>도 예상 밖의 사랑을 받으며 거만함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저를 온전히 담은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아니, 만들면 무조건 잘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주로 내려와 저의 상징이기도 한 볼캡과 아내의 소망이었던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사달은 여기에서 나게 됩니다. 20년 넘게 지내온 서울이 아닌, 낯선 제주에서 그것도 전혀 해본 적 없는 패션과 F&B라는 낯선 일을 시작합니다. 평생을 모으고, 투자 받고, 빌려서 만든 10억을 1년 만에 소진해 버리고 말았죠. 정말 모든 에너지를 써서 좋은 동료를 모았고 좋은 제품을 만들었지만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했지만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처참하게 실패를 경험하고 그로부터 다시 1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무엇이 문제였고,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지독하게 실험하며 전년 대비 375%의 매출 성장을 달성했습니다. 메이저 브랜드가 아닌 스몰 브랜드가 해야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겨우 분간할 수 있게 되면서 말이죠. 혹독한 수업료를 치룬 셈이죠.
지금도 여전히 성공방정식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무엇을 먼저 해야될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다시 말해 망하지 않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생존업자’가 된 것 같습니다.
거만했던 마케터에서 생존을 위한 업자가 됐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생존을 위한 비법에는 생존과 거리가 멀다고 느낀 브랜딩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마케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