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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Apr 13. 2024

모자 하나 만들면서 뭐 그렇게까지 하냐?

패션업의 본질

태리타운을 시작하고 주위에서 가장 자주 듣는 충고가 “모자 하나 만드는 데 뭐 그렇게까지 하냐?”.


그리고 이 말 아래 깔려 있는 숨은 이야긴 “넌 패션업을 몰라”였다.


인정할 수밖에. 그도 그럴 것이 워커로서 평생 메시지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만 해왔다. 그게 플랫폼이었다가 사람이나 정책으로 바뀌는 차이지 패션업은 그저 유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

나 역시 초심자의 마음으로 차근차근 배우면서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지만, 여전히 동의 못하는 한 가지가 있다. 틀린 건 없는데 아무리 곱씹고 곱씹어도 탐탁치 않은 얘기.


“요즘 패션업은 이미지 빨이야. 보여지는 게 전부라고. 제품력? 80점만 돼도 충분해. 90점, 100점을 만들어도 너만 알지 소비자는 몰라. 그 노력과 비용을 비주얼에 투자해.”


대충 이런 얘기들이다. 한 두 명이 하는 얘기가 아니다보니 흘려지지도 않고, 뭣보다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런데 그래서 그러나 그렇기에 그렇지만-


백만 번은 갈등을 한다. 정말 이게 맞나?


‘소비자는 몰라주더라도 나만의 길을 간다’는 장엄한(?) 장인정신 같은 게 아니라 정말 사람들이 모를까? 내가 지금 자기만족에 취해있나 되뇌인다.


천만 번 정도 더 고민한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여전히 패션은 쥐뿔도 모르고 초짜고, 동종업계 경험도 없는 사짜지만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는 절충안이기도 하지만 고집이기도 한 결론이다.


태리타운이라는 브랜드의 첫 번째 고객은, 그래서 가장 중요한 고객은 바로 나다. 누구보다 오래 모자를 쓰고, 많이 사고, 꼼꼼히 살핀다. 이보다 좋은 고객이 어딨는가?


그런데 제품력을 높일수록 내가 너무 좋다. 개선되는 부분을 메이커로서 ‘아는 게’ 아니라 유저로서 ‘느낄’ 수 있다.


그렇다보니 80점만 해선 높아진 주요 고객(나)의 감도를 충족시켜줄 수 없다. 우리는 모두를 위한 볼캡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진짜 모자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니까.


우리는 100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인스타 할 시간을 좀 줄여서라도 동대문 가서 스와치를 봐야 하고, 스케치를 하나라도 더 해야 한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완벽을 추구해야 한다. (불가능할지라도!) 그냥 프로젝트성으로 한번 만들고 말 브랜드라면 몰라도 자식처럼 평생을 키워갈 브랜드라면 우선해야 될 가치다.


너무 꼰대 같은 얘기고 교과서적이고 계몽적이고 이상적인 얘기로 치부될 수 있지만 이게 본질이 아닐까?


모자 따위가 감히 할 수 있는 혁신이란 이런 것이다. 이미지로 소비되는 브랜드가 아니라 제품으로, 경험으로 만족하는 브랜드.


듣보 브랜드 주체에 이렇게 선언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도 고객들의 이야기들에게 그 힌트를 얻었기 때문. 고객들과 제품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한다. 디엠으로 톡톡으로. 그렇게 낯선 이들과 모자로 수다를 떨다보면 점점 확신이 든다.

메이커들은, 특히 패션은 보여지는 이미지가 우선이라는 이들은 긴장해야 한다. 고객이 모른다고 치부해선 안된다. 이는 고객, 아닌 인간의 본능에 대한 무례다.


감각이 아직 계발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 길을 한번 터주면 인간의 감도는 끝을 모르고 뻗어간다.


태리타운의 하입은, 신영웅을 힙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언코 제품력이다. 다른 말로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것을 놓지 않고 계속 밀고가는 엉덩이의 힘이 우리의 하입이다.

그리고 트레바리 북토크를 통해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누고 만들어갈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스몰 브랜드에 관심이 있거나 태리타운이 궁금한 분도 환영합니다! 트레바리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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