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볼캡 브랜드를 열면서 스마트 스토어를 중심으로 전략을 짰더니 주변에서 혀를 찼다.
패션 브랜드에게 스스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무신사와 같은 플랫폼을 우선시하라고 했다.
때깔 좋은 자사몰과 룩북을 준비한 뒤 무신사, 29CM, W컨셉과 같은 곳에 입점하는 것이 패션 브랜드의 초반 테크트리라 했다.
다들 그렇게 한다고. 그래야 패션 브랜드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스스는 그냥 생활용품 판매하는 느낌이라면서. 뭔말인지 알 것 같았지만 오히려 이 말이 내겐 오기로 작용한 듯 하다.
스스에서 잘 되는 패션 브랜드가 없다면 우리가 처음이 되자란 호기(!)로 2년 가까이 스스를 디깅해왔고 볼캡이라는 단일 품목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파워 등급을 유지할 수 있는 매출을 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게 성공이냐, 실패냐 평가를 해야 한다.
오기와 호기가 뒤섞이며 개고생을 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족할 정도의 성공이다. 매출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조금 애매하다. 빅파워는 아니니까.
그렇다면 내가 성공이라고 말하는 기준은 뭘까? 자기 위로? 정신승리?
Nope! 바로 고객을 믿고 까부는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 우리가 쌓아올린 리뷰를 읽어 본다면 그 누구도 내게 "에게...?"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리뷰에서 고객들은 '일관된 이야기'를 한다.
소비자가 일관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브랜딩이 됐다는 말이란 걸 브랜딩 책을 조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아는 내용이다.
태리타운의 볼캡의 리뷰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내용은 '비싼데 써 보면 진짜 좋아서 쓸 수 밖에 없다. 결국 재구매'라는 결로 큰 가닥이 잡힌다. 그리고 최근에는 더 큰 사이즈 또는 더 작은 사이즈를 찾는 고객이 늘었다. 소재를 언급하다 최근 사이즈 얘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편견 타파라는 큰 메시지 속에서 처음에는 소재를 이야기했다. 여름에도 쓸 수 있는 코듀로이. 그리고 이게 주는 편안함. 그리고 추가로 같은 메시지 속에서 머리에 맞게 다양한 사이즈를 제안하고 있다. 프리하지 않은 프리 사이즈에 대한 편견을 부수고 싶었기에.
모자가 작아서 환불을 하면서도 우리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고객이 많은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의 메시지, 편견을 뛰어넘겠다는 이야기들이 고객들의 욕구와 맞물려 브랜드가 잡혀간다. 그냥 대두볼캡이니 소두볼캡이니 하는 게 아니라 '내게 맞는 잘 만든 모자'를 찾는 감도 높은 고객이 모이는 이유다.
그렇게 우리는, 태리타운은 진짜 브랜드가 되어 가고 있다.
이를 받쳐주는 비주얼 컨셉과 플레이는 이를 거들 뿐, 이것만으로 브랜드를 견인할 수 없다. 고객과 함께 할 때 서야 브랜드는 브랜딩이 된다.
고객들이 일관된 이야기를 하며 태리타운을 중심으로 모여 들고 있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으로 스스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이다. 플랫폼이었으면 제품 구매로 끝났을 수도 있는데, 우리의 스스는 작은 아지트가 되어 있다.
내 결론은 스스로도 브랜딩을 할 수 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어떤 플랫폼이든 브랜딩을 할 수 있다. 관건은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러한 인식과 자신감으로 자사몰을 오픈했다.
스스 좋다고 난리치더니 갑자기 자사몰? 스스로 브랜딩을 경험했기에 또 한 번의 점프가 필요하다.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싶고, 고객들과 더 재밌게 프로모션도 하고 놀고 싶은데 스스는 형식상 제약이 많다.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하고 싶은데 갈증이 났다. 고객을 더 즐겁게 뛰어놀게 하려면 우리 맘대로 할 수 있는 우리 놀이터가 필요하다.
사실 업계 전문가들이 스스 다음으로 비추하는 게 자사몰이다. 더 정확히는 자사몰에 인력과 시간, 자본을 투자하는 것이다. 많은 브랜드가 형식상 자사몰을 두고 매출은 외부 플랫폼으로 낸다고 했다. 온라인 룩북 같은 역할만 한다고 했다.
또다시 여기서 오기가 발동. 이는 분명 스스와는 비교도 안되는 모험이고 도전일 것이다. 그러나 스스에서의 제약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외부 플랫폼은 시스템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여전히 답답할 것이다. 무엇보다 태리타운이라는 100년 역사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 가야할 길이다.
그 역사적인 첫 발을 떼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한 자사몰을 오픈한다. 여전히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완벽을 추구하다가는 영원히 열지 못할 것 같아서 용기를 내어 태리타운 스토어를 오픈한다. 스토어지만 매거진 애호가답게 읽을 거리들을 준비했다. 그리고 계속 쌓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그냥 문만 열기 손 부끄러워 태리타운 사상 가장 큰 규모의 쿠폰을 담았다. 고객 등급을 만들어서 재밌는 볼캡 용품들을 선물하고자 한다. 처음 제주에 매장을 열었을 때랑 비슷한 기분. 우리 온라인 나와바리(ㅋ)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신기한 건 여기에서 퍼주는 건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
도메인조차 너무 마음에 든다. 그냥 태리타운 그자체!
www.tarrytown.co.kr
혹시나 궁금한 이들을 위해, 구글에서 '태리타운' 검색하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