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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Sep 22. 2017

저는 테러범이 아닙니다

박원순 관찰기 #5

지난 5월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서울로 7017이 개장하는 날이었다.


이날 나의 역할은 서울로 7017 개장현장을 SNS로 실시간 중계하는 것이었다. 주말 근무따위...! 서울로를 구경하러 가는데 그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갔다. 황사가 심하다고 해서 마스크까지 꼼꼼하게 챙겨서 갔다. 정말정말 아끼는 마스크였다. 무독성 실리콘 소재로 안경을 껴도 안경에 서리가 끼지 않는 인체공학적 디자인에 나노입자 90% 이상 차단하는 4중 구조의 필터에... 정말정말 아끼는 마스...크...


서울로 7017 개장현장 중계가 미션!


사장님 바로 아래, 열심히 촬영 중


거울을 보며 아주 살짝 쐬-한 느낌은 있었지만 일단 현장으로 갔다. 인파가 거의 여의도 불꽃축제 수준으로 몰리는 바람에 온몸을 던져가며 사장님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뛰어다녔다. 그러던 중간중간에 행사 주최측에서 고용한 경호원으로 보이는 분들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이러시면 안됩니다!"
"아, 죄송한데 시장님 수행 중이에요."
"아...드,들어오세요 빨리-"


경호원들의 의심 가득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들여보내주는 표정을 뒤로하고 그렇게 열심히 서울로 이곳저곳을 사장님이랑 함께 다녔다. 다니면서 솔직히 많이 놀랐다. 박원순 서울시장, 그니까 우리 사장님이 젊은 사람들한테 그렇게 인기가 많은 줄 전혀 몰랐다. 인지도야 의심하지 않지만 인기까지 있을 줄이야... 솔직히 의외였다(아직도 의외다...). 결국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촬영이 쉽지 않았다. 덕분에 제대로 건진 컷이 별로 없어서 초조해질대로 초조해진 상태였다. 왜 그런 것 있지 않나, 초반에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초반에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인파로 넘쳐나는 서울로, 오른쪽 아래 런웨이


그러고 있는 와중에 '서울 365_서울로 패션쇼'가 있다는 정보를 받았다. (옥히, 됐다!) 여기서 한 컷 만들어내면 오늘 밥값은 충분할거란 감이 팍 왔다. 바짝 긴장하고 인파에 밀려서 사장님이랑 멀어지지 않게 찰싹 붙어서 패션쇼 런웨이 바로 앞으로 따라 들어갔다. 정확히 말하면 빨려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런웨이 앞으로 빨려 왔더니 다들 수트차림의 어르신들과 잘 차려입은 패션계 인사로 보이는 분들이 의자에 차분하게 앉아 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내 의상은, 흐음...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살짝 부끄러웠지만 사장님 가까이로 들어왔기에 흡족해하며 라이브 방송을 할 준비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순조로울 줄 알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강조)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좋았다. 촬영준비를 하며 100만 뷰를 찍을 생각에 혼자 히죽거리며 삼각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멘션을 써야 사람들이 더 많이 볼까 스마트폰을 보며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는데 내 앞에서 작은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응? 잠깐만... 내 앞? 사장님? 뭔일이 생겼...?'   


머릿 속에서 생각이 다 끝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켜 사장님을 구하러 달려들었다, 뛰어들었다. 열걸음 정도 되는 거리를 서너걸음만에 날아갔더니 한 어르신이 우리 사장님에게 격하게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행사 관계자들은 이를 막기 위해 기습한 어르신의 팔을 붙잡고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내 시선은 사장님에게로 향했다. 사장님은 이런 일이 익숙한 듯 태연하게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지만 사실 쫄긴 했을게다)다.


그렇게 한차례 소동이 일어나서 패션쇼가 잠시 중단이 됐다. 쇼를 준비하던 모델들도 흐름이 깨졌고 관객들의 몰입도 깨졌다. 진정되지 않는 심장 떨림으로 100만 뷰를 찍겠다던 나의 의지도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도 없이 무사히 패션쇼는 마쳤지만 나는 결국 '한 컷'을 만들지 못했다.


그렇게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고향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카톡 한통을 받았다. 카톡에는 패션쇼 관련 기사 링크와 친구의 한마디가 있었다. "니 요새 이카고 댕기나?"


니 요새 이카고 댕기나?


'훗, 짜식- 내가 사장님 수행하는 걸 봤구나' 하며 살짝 으쓱한 마음으로 링크를 클릭했다. 인링크도 아니고 아웃링크를 보내다니 센스가 없군,하며 그래도 보내준 정성을 봐서 클릭을 했다. 역시나 수많은 광고팝업이 떴고 하나씩 천천히 광고를 지워가며 기사를 봤다. 이 포토뉴스는 아래와 같이 짤막한 문장과 사진으로 상황을 담고 있었다.


[시크뉴스 권광일 기자] 20일 오후 서울 중구 퇴계로 대우재단빌딩 연결통로에서 진행된 '서울365-서울로 패션쇼'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기습적으로 시민이 난입해 뒤늦은 제지로 패션쇼가 중단됐다.

권광일 기자 news@fashionmk.co.kr
기사 내 사진


저 익숙한 실루엣은 뭐지? '기습적으로 시민이 난입'이란 텍스트가 눈에서 떠나기 전에 동시에 들어온 한 장의 사진. 여기선 누가 봐도 나이키 하프 팬츠에 나이키 에어리프트를 깔맞춤하고 실리콘 마스크로 한껏 멋을 낸, 저 청년이 '기습적으로 난입한 시민'으로 보인다. (해당기사)


저 익숙한 실루엣은 뭐지?


결국 그날 난, 한 컷을 만들긴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만든게 아니라 만들어다. 만들어다가 더 맞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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