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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May 28. 2019

주례사를 대신한 어머니의 명령

하늘 같은 남편과 우주 같은 아내의 빅뱅 같은 일상 #3

얼마 전 부부싸움을 했다. 평소에도 빅뱅 같이 싸우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심각했다. 차라리 서로 으르렁 거리며 싸웠다면 오히려 빨리 정리가 됐을테지만 일주일 정도 서로 대화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내 감정은 자연스레 분노보다 체념으로 흘러갔고 지칠대로 지쳐갔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가 우연히 랩탑에서 어머니가 직접 쓰신 주례사를 발견했다. 당일에는 너무 떨리고 정신없어 제대로 듣지 못했던 어머니의 주례사를 다시 천천히 읽어 봤다.



저는 신랑 신영웅의 어머니 서옥주입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귀한 시간 내어 주시고 함께 해주신 친지, 친구, 하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꾸~~~벅)  실제 어머니가 써두신 원고에 저렇게 되어 있다.

우리 아들이 이렇게 예쁘고 지혜로운 아내를 맞이하게 되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기쁘고 기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오늘 한 마디하려고 합니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부탁한다.

나는 너희들이 서로를 이기려고 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유리그릇과 같다. 금이 가면 풀이나 접착제로 바르면 다시 사용할 수 있겠지만 깨지기 전의 모양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그러니 처음부터 깨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얼마 전 평창 올림픽에서는 열심히 하면 금, 은, 동메달이 주어졌지만 우리들의 삶에서는 아무리 둘이 싸워 누군가가 이겨도 아무도 메달을 주지 않고 상처만 가득할 뿐임을 기억하면 좋겠다. 나도 아부지랑 다투어 이겨서, 누군가가 나에게 금메달을 주었다면 지지 않고 끝까지 피 터지게 싸웠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주는 사람도 없고 내 모습만 일그러지더라. 일그러진 내 모습을 보면 비참하고, 내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져 그 후유증이 오래 가더라. 그러니 너희들은 이런 실수를 하지 말고 서로 측은지심으로 봐 주면서 살기를 바란다. 욱하는 순간만 지나면 온 세상이 평화로 변하고 후회하는 일이 줄어듦을 잊지 말고 평화롭게 살아라. 온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다.

 

내가 또 열심히 읽는 혜민 스님의 책에서의 한 부분을 인용하려 한다. 참고로 우리 집은 천주교 집안이며 그녀는 주일이고 평일이고 가리지 않는 독실한 신자이다.  


사랑의 모습은 수용과 자유이지
속박과 컨트롤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실천에 옮길 수 있었으면 한다. 또 너희들이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늦지도 않고 또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니니 오늘부터 크게 욕심내지 말고 서로 아껴주고 배려하면서 평생 오늘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좋을 때나 힘들 때나 서로 내 편이 되어 든든하게 서로를 지켜 주고 힘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아들, 그리고 며늘아!!!

난 오늘부터 난 내 인생을 살아볼까 한다. 물론 자식 걱정은 하게 되겠지만 내 삶과 건강을 더 많이 걱정 하면서 살고 싶다. 그러니 너희들도 너희들 인생을 더 많이 걱정하고 사랑하면서 살기를 바라면서 나도 끝이 보이는 내 인생에 집중하려 한다. 다른 말로 하면 ‘각자 행복하자’뜻이다. 너희들은 서울에서 나는 대구에서! ㅎㅎㅎ


그리고 아들! 네가 작년에 사 준 시집 중에서 나의 가슴을 울린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를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마치려고 한다.

 

풀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짧은 글이지만 이 시를 읽으면 힐링되더라.

어려운 일에 부딪쳐도 서로를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마음에 평화가 오기도 하고 해결책이 나오기도 하더라. 그래서 난 자주 읽는다. 너희들도 마음의 안정이 필요하면 이 시를 생각하면 어떨까?

 
멋진 아들, 그리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며늘아!

누구보다 너희들의 결혼을 축하하고,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아라. 이건 부탁인 동시에 명령이다.


하객 여러분, 오늘 저는 많이 기쁘고 기쁩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도 저와 같은 생각이기를 바라면서 모두모두 행복하십시오. 고맙습니다.




어머니의 글을 읽고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나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나에게 잘못이 없음을 입증하고 아내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을 관철시키는 행동 밖에 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잘못'이라는 게 막상 꺼내보면 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의 본질 보다는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리품이라곤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뿐인 이 전쟁에서 나는 대체 무엇을 가져가고 싶었던 것일까?


어머니의 주례사 덕분에 감정들이 많이 누그러졌고, 며칠이 지난 지금은 화해를 했으며, 우리는 또 여느 때처럼 잘 지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우리는 또 전쟁을 반복하게 될 것이란 것을. 그렇지만 어머니의 말씀대로 그 전쟁에서 우리 부부가 얻을 것이 없다면 우리는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비와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앞으로의 나의 결혼생활은 그것들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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