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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Mar 11. 2019

온전히 울어줄 수 없다는, 죄의식

하늘 같은 남편과 우주 같은 아내의 빅뱅 같은 일상 #2

어제 아침에 갑자기 아내가 품을 파고 들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으레 있는 일인데다 잠든 지 얼마 안된 상태여서 일어날 수가 없어 그냥 안아주었다. 무슨 말을 하는데 잠이 덜깬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우는 게 느껴졌다. 눈물 탓에 그의 얼굴에서 나는 열이 나에게까지 전달되고 놀란 나는 그제서야 눈을 떠 묻는다.


넷째 이모가 돌아가셨어.


아내는 넷째 이모네 가족과 함께 살았기에 각별했다. 원래 살 맞대고 사는 정만큼 무서운 게 없다. 나 역시 태어나자마자 이모집에 보내져 커온 만큼 그 감정이 어떠하리란 것이 이해가 됐다.


그러나 문제는 ‘이해’만 되는 내 자신이었다.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슬픔 이상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분을 결혼식 때, 너무 정신이 없어 내가 뭘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 날 한 번 뵌 게 전부인 이모님의 비보에 나는 아내만큼 울지를 못했다. 물론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아내를 ‘이해’하는만큼 같이 울어주고 싶었는데 끝끝내 나는 아무것도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급한 일만 정리한 채 목포로 내려갔다. 장례식장에 놓인 이모님의 영정 사진은 이런 내 속도 모르는지 낯설었다. 준비된 이별이 아니었기에 영정 사진 역시도 급했던 듯 하다. 조금 젊었을 적 모습이신 듯 했다. 내 안에 죄의식은 나를 계속 괴롭혔다.


낯선 처가 친지들을 조직화하는 작업도 한쪽 뇌에선 동시에 일어나야 했다. 첫째 이모님이시고... 그분들의 자식들은 또 저기, 저기 계신 분들이고... 또 저기 있는 아이는 사촌 언니의 아들이고... 슬픔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그렇게 꽤 긴 시간을 입을 떼지 못한 채 앉아만 있었다. 새로운 분들이 올 때마다 새신랑으로서 인사 드리느라 일어나는 게 전부였다. 


새벽에 목포를 떠나면서 페달을 심할 정도로 밟았다. 속도계는 200에 닿아 있었다. 이는 평소에 하지 않는 행동이다. 출근을 핑계로 얼른 서울을 가야 한다는 표면적 명분은 있었지만, 어쩌면 내게 들었던 부끄러운 죄의식을 얼른 떨쳐내려했던 본능이었을 지도 모른다.


가족이 됐지만 그 공유된 기억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의 죽음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낯설고, 또 낯설었다. 뭣보다 아내에게 잘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전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함은 꽤 무겁게 나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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