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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Jul 24. 2019

책은 사라질 것 같다, 정말

책리뷰_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

'어벤저스: 엔드게임'에 나오는 대사로 사람들에게 더 익숙할지도 모를 그 단어, 인에비터블Inevitable.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이 단어가 주는 힘은 꽤 무거웠다. <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는 사실 가벼운 호기심으로 시작해 무거운 마음으로 질척대며(?) 읽어 내려간 책이다. 


사실 원문으로 읽은 것이 아니기에 케빈 켈리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유쾌한 경제경영서가 아닌 묵직한 철학서를 읽은 기분이었다. 그는 눈에 보이는 현상들만으로 어설프게 내일을 예견하지 않았다. 어설픈 예언서는 아니란 얘기다. 대신 인간이 지금까지 보인 행태와 본능을 관찰하고 여기에 기반해 미래에 대한 자신만의 제안을 한다. 마치 플라톤이 초월적 진리인 이데아에 대해 강조했다면 케빈 켈리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과 현상의 관찰에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연상케 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저자는 앞서 언급한 태도를 바탕으로 불가피한 것을 거부하거나 강하게 반대할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신 이를 경계하면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다. 마치 자신의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서양의 결투보다 상대의 힘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동양 무술의 정신과 맞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명사의 세계에서 동사의 세계로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단순한 산물이 아니라 그 산물들이 만들어지고 이어지는 흐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결과물보다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특히 본격적으로 책을 쓰는 직업에 입문한 내게 스크리닝(screening) 파트는 음침한 위기감과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엿보는 시간이었다. 화면을 보는 것(screening)을 책을 읽는 것(reading)과 구별되는 것이 아닌, 더 진화된 상위의 형태로 보면서 '책의 개념 구조'만 남을 것이라 말했다. 도구로서의 '책'을 넘어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우리가 말을 걸게 될지도 모를 인격의 일부가 될 것이라 예견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스크리닝은 결국 책 읽기가 사라지고 화면 보기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눈을 통해 무엇인가를 습득하는 행위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라 감히 추측해본다. 


3주 정도 낑낑대며 끊어 읽어갔다. 보통은 이해가 안 되거나 불편하면 오히려 속도를 내서 읽는 척 넘어가버리는 독서습관을 가진 내게는 낯선 경험이었다. 그런 내게 <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는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지금껏 글로 밥벌이를 했다곤 하지만 최근 처음으로 단행본을 내고 '작가'라는 정체성을 처음으로 부여받은 내게 책의 소멸은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저자인 케빈 켈리에 따르면 이 역시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나는 이를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유명한 이가 그렇게 말해서라기 보다는 나조차 이를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덮을 즈음에는 작은 빛줄기를 발견했다. 그가 말하는 스크리닝은 책 읽기가 사라지고 화면 보기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눈을 통해 무엇인가를 습득하는 행위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런 해석은 나의 욕망이 반영된 삐뚤어진 해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말한 '확장'이란 개념 속에서 지푸라기를 잡고 싶다. 리딩(책을 읽는 것)이 스크리닝(모니터를 보는 것)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한 부분으로 잠들어 여전히 우리는 이러한 행동을 지속할 것이란 것을 말이다. 


나는 이제 내 이야기를 세상에 하기 시작했고,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러니 어떠한 형태로든 '책'은 남아주어야 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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