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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Jul 27. 2021

째째했던, 째째한, 째째할 사람

페르난도 보테로가 불러일으킨 기억

#1

언제부턴가 미술관 같은 곳에 가서 작품을 사진으로 담는 걸 기피하게 됐다. 어릴 때 경험한 부끄러운 기억 덕분이다. 벌써 15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날의 째째했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기억을 잊고 살았는데 얼마 전 우연히 아내랑 여행을 갔다가 본 작품 덕분에 15년 전의 째째했던, 그리고 여전히 째째한 나를 봤다.



#2

인턴 시절 퇴근하고 첼시 갤러리들을 한 바퀴 돌고 집에 가는 걸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벌써부터 허세의 기운이 퐈악) 늘 칼같이 퇴근을 시켜준 덕분에 기차를 놓친 적이 없다. 화이트 플레인 역에서 그랜드 센트럴까지만 돈을 썼다. 그리고는 생활비가 부족해서 지하철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팍팍하게 지내면서도, 그렇다고 미술 전공자도 아니면서도(물론 꿈을 꿨지만), 작품 활동을 할 것도 아니면서도, 작품을 살 것도 아니면서도 뭐에 홀렸는지 그렇게 출근도장을 찍어댔다. 집에 돌아갈 때는 다리가 너무 아파서 하이라인에 있는 나무 선베드에 자주 눕기도 했다. 그때는 그런 내가 괜히 대견해 보이고 멋있... 후우... 열정을 가장한 허세. 퉷!


그렇게 스스로에 취해있던 어느 날 우연히 액자에 비친 나를 보게 된다. 액자 속에 있던 나는 작품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옆에만 서서 디카 렌즈만 보고 있었다. 내가 서 있던 맞은편 액자의 아크릴에 내가 비춰진 것이다. 


아직도 그날 내가 뭘 입었는지 선하다. 트루릴리젼 부츠컷 청바지, 그것도 실밥이 아주 두꺼운 모델에 아베크롬비 라운드 티를 입고, 그 위에는 클리어런스로 산 띠어리 블루종으로 한껏 멋을 냈다. 게다가 안경도 모스콧 매장에서 직접 산 렘토쉬를 끼고 있었다. (맞다. 지하철비 아끼고, 밥값 아껴서 신나게 쇼핑하던 시절이다...)


분명 집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거울에 비친 내가 꽤나 만족스러웠다. 혼자 턱을 치켜 들고는 씨익(후우...)하는 남자들의 자뻑 퍼포먼스까지 하고 나왔는데 액자에 비친 나는 꽤나 볼품 없었고 '째째하게'까지 보이더라.



#3


이 그림이다. 내가 미술관에 가도 그림을 찍지 않게 된 이유를 굳이 상기시킨, 째째함을 책이나 사전이 아닌 현실에서 경험하게 해준 그날의 기억을 굳이 떠올리게 만든 불편한 작품.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이 풍만한 두 사람.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무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그리고 그 감정은 점점 증폭되어 내게 괜히 굴욕감마저 들게 했다. 살쪄서 그런 건가? 이유를 찾고 싶었지만 15년 전 그때처럼 마냥 거기 앉아서 쳐다볼 순 없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아내가 부르면 가야 하는 나이말이다. 


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사진을 푹 찍었다. 사진을 안 찍게 된 이유를 떠올리게 해준 작품을 찍는 아이러니라니. 급하게 찍느라 천정 조명이 빛이 액자에 그대로 찍혀 있었다. 


#4

나중에 숙소에 와서 그림을 다시 봤는데 이 조명탓인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의 줄로 연결된 무용수(아마도?)들은 철저하게 상대를 외면한다. 내가 느낀 불편함은 여기에서 왔을 것이다. 호기심이 생긴다. 스스로를 째째하게 만들었던 기억을, 이불킥하던 기억을 굳이 끄집어낸 이 그림을, 그리고 이 작가를 검색해봤다.

출처: 현대미술 쉽게보기


페르난도 보테로. 콜롬비아 출신으로 32년생인데 아직 살아 있다고 한다. 흔한 소개로는 남미의 피카소? 동의할 수 없지만 왜 이러한 별명이 붙었는지도 알 것 같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같이 찾아본다. 그 중에서도 묘하게 눈길을 끄는 건 유명한 원전(原典)을 비트는 작품들이다. 라파엘로나 다빈치, 얀 반 에이크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클래식들을 뿔려(!)놨더라. 


얼핏 보면 희화화한 것 같지만 계속 보고 있으면 오히려 원전을 위로하고 보완해주는 것도 같다. 그림들을 한 번 찬찬히 보라. 너무 따뜻하지 않은가!

출처: 현대미술 쉽게보기

 

굳이 그의 인터뷰나 관련 평론을 찾아보지 않으려했다. 그 풍만함의 이유를 그의 입을 통해서도, 아니면 전문가의 입을 통해서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더 째째해질 것 같아서. 그러나 판도라가 상자를 연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고 나의 지적 허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째째해지는 순간이다. 쭈욱 읽어본다. 끄덕끄덕, 끄덕끄덕 하다가 덜컥 불편한 멘트가 눈에 들어온다.


이 클래식을 비틀어놓은 것과 관련한 부분이다. 그의 표현을 단순히 키치함으로 치부해 버렸다는 내용을 봤다. 흔히 말하는 삐급으로 낙인 찍은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학시절 시창 시간에 교수님께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출처: 현대미술 쉽게보기



#5

이는 열등감에 대한 이야기다. 시창, 시창작 수업은 국문과에서 시를 잘 쓰는 애들이 우글우글한 수업이다. 시만 잘 쓰면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나름 편한(?)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수업 이후로 나는 시를 쓰지 않게 됐다.


기말 과제에 대한 교수님의 평가

"네 글을 보면 OOO 시인의 글이 떠올라. 여류 문인인데... 음, 그런데 말이다. 언어 유희는 깊이가 없어. 재미는 있는데. 너는 광고나 마케팅 쪽으로 일해보는 건 어때?"


(선견지명인가?)



#6

다시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으로 돌아온다. 그의 기법을 단순히 키치하다는 것으로, 또는 B급 감성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사람들에게 주는 울림이 작지 않다. 그래서 지금의 그는 거장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다. 앞의 평가는 한 때의 평가였을 뿐이었다. 그는 쉼없이 비틀어왔고 뿔려왔고 자신만의 풍만함으로 세계관의 풍만함을 이루었다. 


반면에 나는 어떤가? 열등감에 사로 잡혀서 그 수업 이후로는 시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역시나 째째했고, 이를 그 교수의 탓으로 치부하는 째째함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때도 째째했고, 여전히 째째한,

앞으로도 째째할 예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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