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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Jul 16. 2021

홀아비바람꽃을 닮은 조명

Homo consumus의 욕망 #2

홀아비바람꽃을 닮은 조명

첫 번째 욕망은 여전히 실현되지 못했지만, 감히 두 번째 욕망을 꿈꾸기 시작했다.

"비싼 탁구대가 사고 싶어졌다"



아내와 함께 살다 보니 내 취향을 100% 발현하기 보다는 합의와 조정, 그리고 수긍(?)을 통해 인테리어가 결정된다. 물론 우리 집의 인테리어, 특히 거실은 보면 볼수록 만족스럽다. 진심이야. 보고 있지? 


물론 처음 신혼집을 꾸밀 때 마음이 넓은 아내는 서재를 마음껏 꾸밀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줬었다. 허나 예산이 나의 상상력과 욕망을 충족하기에는 0이 하나 정도 부족했다. 게다가 집 전체 톤을 싹 무시할 수도 없었고. 세상 모든 마케터들이 공감하듯 '나의 결을 아주 찔끔 흩뿌리며 예산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역시나 결과는 아내의 칭찬으로 잘(?) 마무리됐다. 뿌듯함과 동시에 밀려오는 이 기시감은?! 클라이언트나 CEO를 만족시킨 마케터의 숙명 같은 게 또 느껴졌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 취향이란 놈이 자꾸 꿈틀댔다.


네 취향이 대체 뭔데?


취향이란 건 워낙에 범위를 단정하기에 모호하고 가변적인 것이라 딱 이거라도 한 번에 다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최대한 키워드로 뽑아내본다면(이게 직업이니까...) Raw일 것이다. 워낙에 날로 먹는 걸 좋아하는 인생이라 그런지 예전부터 날것이 좋았다. 


특히나 시간이라는 팩터를 먹은 날것은 눈을 즐겁게 했다. 앤틱이라고 까지 하면 너무 갔고, 제품명이나 제품설명에 빈티지vintage나 인더스트리얼industrial 같은 키워드가 붙은 것들이 가장 취저일 것이다. 태어나서 받은 첫 퇴직금으로 산 자전거 컬러조차도 로우라커(동급 사양 중 비용이 가장 높다...)일 정도로 확고하다. 

 

사실 결혼 전에 함께 가구를 보러 갈 때 마음에 드는 데스크와 체어가 있었지만 사진만 쓰윽 찍고 돌아왔다. 아내는 그닥이라는 표정이었기에. 그 사진이 전화기가 2번이나 바뀌는 지금에도 여전히 내 사진함에 있다는 것을 아내는 절대 모를 것이다. 선생님, 저는 행복합니다. 만족합니다.

이 녀석!


그러던 와중에 원고 작업이 많아지면서 작업실을 마련하게 됐다. 작업실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비용이기에 아내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작업실은 최대한 비워둘거야. 뭐 안 사서 넣으려고. (다른 건 넣지 말고 조명 하나만 맘에 드는 걸로 하려고.)"


물론 마지막 문장은 묵음으로 했다.


그런데 잊히지 않는 조명이 생겼다. 자꾸만 아른거린다. 결국 용기내어 아내에게 보여줬다. 

Flos의 Toio


플로스(Flos)라는 이탈리아 조명 브랜드. 

플로스는 라틴어로 꽃이란 뜻인데 조명 브랜드에는 너무 딱이지 않은가! 꽃과 조명은 형태적으로 공통점이 존재하는데 이는 디자이너들이 작업을 하는데도 명확한 디렉션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 내가 반한 토이오(Toio)는 플로스의 디자이너들 중에도 거장 오브 거장인 카스틸리오니 형제의 작품 중 하나로, 자동차 램프를 뜯어와서 수리 중인 것 같은 형태를 지녔다. 꽃으로 비유한다면 꽃대가 긴 홀아비바람꽃이랑 닮았다. 이름이 복선인가. 


소박 맞을 각오로 가격도 보여준다.


용기내어 갖고 싶다고 아내한테 말했더니, 말이 없다. 

말했는데 말이 없다.

말했다. 말없다.


나는 안다. 그래도 언젠가는 허락해줄 것을.

역시나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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